KDB대우증권 인수전 참여는 박현주(사진) 미래에셋그룹 회장의 세 번째 승부수였다. 미래에셋증권을 앞세워 대우증권이라는 국내 최대 증권사 인수전에 나설 때만 해도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설마'하는 분위기였다. 대우증권 인수 실탄을 마련하기 위해 1조원 규모의 증자를 결정할 때도 대우증권 인수와 자본확충 두 가지 경우의 수를 놓고 있다는 관측도 나왔었다. 유상증자 후에도 자금동원력 면에서 경쟁사보다 뒤진다는 평가가 나돌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소문은 '소문'에 불과했다.
치열한 3파전 양상으로 진행된 인수전 과정에서도 박 회장의 승부사 기질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애초 미래에셋 측은 시장 가치 이상의 무리한 '베팅'은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업계는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 시가총액 이상의 금액은 쓰지 않겠다는 의지를 에둘러 표명한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달랐다. 그는 대우증권의 현재 가치가 아닌 미래에셋증권에 인수된 후의 '미래가치'를 더 높게 봤다. 그리고 가장 높은 금액을 써냈다. 대우증권을 인수하면 현재의 장부가 가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는 박 회장의 자신감이 결국 대우증권이라는 대어를 낚게 된 셈이다. 박 회장은 항상 증권사의 자산이 10조원은 넘어야 제대로 된 투자를 할 수 있다고 강조해왔고 이제 그 목표에 한발 더 다가서게 됐다.
대우증권 인수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되면서 박 회장이 과거 고비고비에서 던진 승부수도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지난 1986년 동양증권(현 유안타증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입사 13개월 만에 과장까지 승진했다. 그 후 그는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으로 이직해 이사직까지 지냈다. 그리고 1997년 동원증권에서 나와 미래에셋창업투자(현 미래에셋캐피탈)와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창업하고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인 '미래에셋 박현주 1호' 펀드를 내놓았다. 그의 '증권맨' 인생 첫 번째 승부수였다. 그리고 이 펀드가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 500억원 한도액이 불과 3시간 만에 다 찼고 수익률은 90%를 넘었다.
2003년 박 회장은 국내를 넘어 해외로 눈을 돌렸다. 두 번째 승부수였다. 국내 자산운용사 중에서는 처음으로 홍콩에 해외법인을 설립하고 글로벌 투자에 앞장섰다. 물론 그 과정에서 좌절도 겪었다. 2007년 10월 해외 각국 주식에 투자하는 '인사이트펀드'를 내놓고 출시 한 달 만에 4조원이 넘는 자금을 끌어모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큰 위기를 맞게 됐다. 결국 박 회장은 투자자들에게 공개사과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시행착오를 겪은 뒤에도 그의 글로벌 투자 철학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현재 세계 12개국에서 11조원에 달하는 현지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