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우리투자증권 패키지(증권·자산운용·생명보험·저축은행) 인수전에 뛰어든 KB금융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바로 우리아비바생명(현 DGB생명)이었다. 우투증권은 탐나는 매물이었으나 우리아비바생명은 부실이 상당했기 때문. KB는 우투 패키지 인수 후 우리아비바생명을 매각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시장에서 적당한 매수자를 찾기가 어려웠다. 결국 KB는 매각 본입찰에서 우투증권 개별 매물에 대해서는 가장 높은 인수 가격을 제시했지만 우리아비바생명에 마이너스 가격을 제시하면서 전체적인 가격 경쟁에서 농협금융에 밀리고 만다.
아쉬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KB는 우투증권 패키지가 농협금융으로 넘어간 후 더 쓰린 가슴을 부여잡아야 했다. 임종룡(현 금융위원장) 당시 농협금융 회장이 우투증권 패키지 인수 이후 우리아비바생명을 DGB금융에 매각하는 '신의 한 수'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인수합병(M&A)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방 금융지주 간 자산 경쟁이 벌어지면서 아무도 사갈 것 같지 않던 우리아비바생명이 DGB에 팔리자 그 같은 상황까지는 예측하지 못한 KB 입장에서 더욱 아쉬움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KB가 M&A 시장에서의 '불운'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비은행 부문 포트폴리오 강화가 절실한 KB는 21일 벌어진 대우증권 본입찰에서 2조1,000억원대 가격을 써내면서 미래에셋증권에 크게 밀리고 말았다. KB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한 결과라지만 인수 후보 가운데 KB의 자본력이 가장 탄탄했고 대우증권 노조까지 KB금융을 선택했던 것을 고려하면 뼈아픈 결과가 아닐 수 없다.
KB는 유독 M&A 시장에서의 성적표가 좋지 않았다. 외환은행(2006년) 인수 포기를 비롯해 ING생명 한국법인(2012년), 우투증권 패키지(2013년) 인수에 잇따라 고배를 마셨다. 지난해 천신만고 끝에 LIG손보(현 KB손보) 인수에 성공하기는 했으나 미국 자산의 부실 문제가 불거지면서 상당한 후유증을 겪었다. 이번에 대우증권 인수전에서 KB가 좀 더 과감한 가격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LIG손보 부실 파장을 겪은 후 KB 이사회가 움츠러들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M&A 업계는 은행지주회사 특유의 보수적인 기업 분위기와 오너십 없는 지배구조,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 등이 KB의 본질적인 약점이라고 진단한다. 기업의 미래를 위해서는 좀 더 통 큰 베팅이 필요한 순간이 있지만 주인 없는 금융지주회사의 의사결정 구조상 이는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이 ING생명 인수를 추진하다 사외이사들과 심각한 갈등을 겪은 것이 단적인 예다. 윤종규 회장은 취임 이후 LIG손보 인수 가격을 확 낮춰 힘을 비축하고 대우증권 인수전에서도 사외이사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승부사' 기질을 보여줬으나 오너(박현주 회장)의 강력한 의지로 인수전에 임한 미래에셋 증권을 당해내지 못했다. M&A 업계 관계자는 "이번 대우증권 인수 실패로 KB는 2013년의 우투증권 인수 실패가 더 아프게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 KB가 대우증권만한 매물을 다시 만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KB는 대우증권 인수를 통해 은행에 편중된 포트폴리오를 한번에 개선하는 한편 은행과 대형 증권사가 결합한 미국의 글로벌 금융그룹 BoA메릴린치와 같은 성장 모델을 꿈꿨다. 이 꿈을 잡시 접어둘 수밖에 없게 된 가운데 윤 회장은 리딩뱅크 도약을 위한 승부수를 다시 찾아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