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미국의 `Friend` 되기지난해 미국 내 일본차의 시장점유율이 사상 최고인 28.6%에 달했다. 도요타 자동차는 포드를 제치고 미국 및 세계시장 2위로 올라서며 일본 기업 최초로 순이익 1조엔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일본 정부는 수출 채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지난해에만 사상 최고인 20조 4,250억 엔 규모의 시장개입을 통해 대 달러 엔화 환율을 방어했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조지 W 부시 대통령 정권과는 벌써 통상마찰이 일어났을 법 하고, 얼마 전 열렸던 선진7개국(G7) 재무장관ㆍ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시장개입에 대한 미국의 경고가 나왔어야 마땅하다. 헌데 조용하다.
지난해 1~11월 미국의 재정적자는 부시 대통령의 선심성 감세정책과 이라크 전쟁비용으로 4,000억 달러로 부풀어올랐고, 이를 메우기 위해 6,700억 달러 규모의 국채를 신규 발행했다. 일본은 시장개입으로 사들인 달러화의 70%를 이 국채를 매입하는 데 썼다. 미국 국채의 절반 가량을 사주는 큰 손이다. 원활한 국채판매가 미국 장기금리를 4%대로 안정시키며 미국 경기를 지탱해주고 있다. 경기가 살아나면서 여력이 생긴 미국 투자자들은 지난해 1~11월 중 도쿄(東京)증시에서 4조5,000억 엔을 순매수하며 또 수익을 올렸다.
일본 정부는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라크 부흥지원을 위해 15억 달러의 무상자금과 35억 달러의 엔 차관을 제공키로 결정해놓고 있다. 공적 채권만 4,400억 엔 규모로, 대 이라크 최대 채권국이기도 한 일본은 미국의 요청에 따라 이 채권도 거의 포기할 것으로 보인다.
이쯤 되면 거의 미국이 이라크전을 일본 돈으로 치렀다는 말이 나올 만 하다. 일본 언론에는 “일본은 미국의 지갑”이란 표현이 등장했다.
1991년 걸프전 때 세금을 더 걷어가며 130억 달러의 전비를 부담하고도 아버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동맹국이 피를 흘리는 데 돈만 내고 말았다”는 비난을 들었던 일본은 이번에는 사실상의 전투지역에 처음으로 자위대도 보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국회에서 야당 당수로부터 “금붕어 똥”이라는 모욕을 들었다. 금붕어에 붙어 있는 똥처럼 미국을 졸졸 따라다니기만 한다는 비아냥이다.
부시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들을 “이 사람(this man)” “편한 사람(easy man)”으로 불렀지만, 고이즈미 총리를 만나면 늘 첫 마디가 “내 친구(my friend)”다. 미국과 사귀기 참 힘든 세상인 것 같다.
<신윤석 특파원 ysshi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