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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조정실의 중재 속에 문화재청과 울산광역시가 반구대 암각화 보존 방안으로 투명막 댐 설치에 합의했지만 단지 시한을 늘린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도 기술검토를 통해 항구적이지 않으면 댐 설치를 포기하고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임시방편적 대책임을 간접 시인하고 있다.
특히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간 10여년 걸친 문화재청과 울산시간 갈등이 현 정부 들어 국무조정실의 중재로 해결됐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국무조정실이 문화재청에 합의를 강요하며 현 정부 핵심과제인 갈등과제 해결건수를 내기 위한 생색내기용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비판여론 무마하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이번에 정부가 제안한 카이네틱 댐은 지난 5월 건축가 함인선씨가 최초 제안했다. 당시에는 문화재청은 함씨를 불러 설명을 직접 들기도 했지만 이 방안 역시 암각화 주변 경관을 훼손할 우려가 많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특히 카이네틱 댐이라는 개념 자체가 임시제방의 일종이기 때문에 지지 여론을 형성하지 못했다. 문제는 함씨의 제안에 대해 집권여당인 새누리당과 다른 정부 부처의 지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는 대목이다. 새누리당은 지난달 2일 황우여 대표가 주재하는 가운데 울산 반구대암각화박물관서 최고위원 회의를 주재하며 임시제방안을 들고 나왔다. 집권여당의 구상이 절묘하게도 함씨가 제안한 '카이네틱 댐'과 공통분모를 이룬 것이다. 여기에 울산을 지역구로 둔 국회의원이 6명이나 포진한 집권당의 전폭적인 지원했다. 결국 정부는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중재에 나섰고 40여일 만에 카이네틱 댐 설치라는 대책을 서둘러 발표했다. 비판여론을 의식한 시한 늘리기에 불과하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는 이유다.
울산지역 문화재 관련단체 한 관계자는 "카이네틱 댐은 표현상 댐일뿐 사실상 구조물에 불과하다"며 "태풍이나 장마가 길어지면 댐의 수위조절을 위해 많은 양의 물의 방류되면 이번 댐 설치로는 한계가 있고 영구적이지 못해 비난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국무조정실 갈등과제 해결 생색내기에 불과=이번 합의로 국무조정실은 지난 10여년에 걸친 갈등이 조정되는 돌파구를 찾았다고 강조하지만 실제 추진되는 과정은 간단치 않다. 이번 MOU 합의안에도 '기술평가팀의 지반 조사, 구조안정성 평가, 사전 테스트 등을 거쳐 카이네틱 댐의 항구성에 대한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면 양측이 다시 협의한다'는 단서조항이 포함됐다. 양측이 일단 '제3의 안'에 합의는 했지만 확정된 것은 없다는 얘기다.
조경규 국무조정실 사회조정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국무조정실이 이번 주부터 바로 댐 설치를 위한 기술평가팀을 조성하고, 실질적인 검토에 들어간다. 통상적으로 3개월 정도면 이 댐의 실효성 및 항구성에 대한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면 문화재청은 다소 시각차를 보였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MOU를 체결하긴 했지만 큰 틀에서의 합의일 뿐 기술검토를 통해 카이네틱 댐 추진 등 대책안은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부처간 이견차도 좁히지 못한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 핵심 쟁점은?=앞서 10여년간 문화재청과 울산시는 반구대 보존대책을 놓고 지루한 공방을 벌여왔다. 문화재청은 문화유산 보호, 울산시는 식수대책에 집중했던 만큼 합의점을 찾기 힘들었다.
문화재청은 태하강 지류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가 침수로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연댐 수위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또 현재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 중으로, 이를 위해선 주변 환경보호도 유적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울산시는 수위를 낮추면 당장 울산시민의 식수가 부족해진다며 생태제방 설치를 주장해왔다. 댐 수위를 낮출 경우 저장 수량이 아래는 적고 위에는 많은 깔대기 구조여서 저장용수가 급격히 줄어 식수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불가한 만큼 생태제방을 쌓자는 입장이었다. 임시방편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긴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뚜렷한 합의점을 찾을 수 없는 만큼 카이네틱 댐을 통해 암각화 손실 문제를 최소화하고, 향후 장기적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