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저탄소차협력금제 늦춘다] 제도 시행 땐 완성차 판매 최대 4.5% 줄어… 후폭풍 불보듯

■ 국책硏 공동 보고서

온실가스 50만톤 감축 그쳐 '기대 이하'

차업계 경기 가라앉는데 엎친데 덮친격

"FTA 위배" 美와 통상마찰 가능성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의장 라인에서 근로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경제DB


정부가 일명 탄소세로 불리는 저탄소차협력금제도 시행을 6개월 앞두고 재검토에 들어간 것은 예상 밖으로 국내 산업계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다. 온실가스 감축 효과도 기대 이하로 저조해 당초 정책 목표달성은 시원찮은 반면 오히려 경기 전반에 부담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의 시장 개입이 뜻하지 않게 악영향을 미치는 '파생적 외부 효과'를 우려하는 셈이다. 이른바 규제의 역설이다. 조세재정연구원·산업연구원·환경정책평가원구원 등 3개 국책연구기관이 공동으로 작성한 보고서는 현실과 명분 사이의 고민 들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탄소 감축 효과 낮아=공동연구팀은 먼저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최초 예상치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실익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0년 녹색성장기본법상 저탄소차협력금 근거를 마련할 때 정부가 추산한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량(2015~2020년 기준)은 160만톤 수준이었으나 이번 연구에서는 같은 기간 50만톤 수준에 그칠 것으로 분석됐다. 제도설계 당시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110만톤이나 부풀렸던 셈이다. 이번에 추산된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차량에 물리는 부담금 상한을 400만원으로 설정해 분석한 결과다.


반면 환경부는 부담금 상한을 점점 높여가는 식으로 제도를 설계하면 당초 제시한 감축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자동차 업계에서는 "부담금 상한선을 400만원으로 설정해도 버거운데 이를 더 높이면 업체와 소비자 모두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크다.

◇경기 위축되는데…차 업계 울상=저탄소차협력금제가 당장 내년부터 시행될 경우 국내 자동차 업계가 상당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중간 연구 결과를 보면 2015년을 기준으로 현대차 판매량이 3,800대(전체 판매의 0.9%) 감소하고 쌍용차 판매량은 1,500대(〃 4.5%)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현대차의 대표 차종인 쏘나타(판매가 2,500만원)를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약 950억원의 매출손실이 발생하는 셈이다. 쌍용차의 경우(코란도C·2,500만원) 약 375억원의 손해를 입게 된다. 특히 쌍용차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이 주축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고 하이브리드 모델이 거의 없어 상대적으로 더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해외차는 지역별로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관측됐다. 상대적으로 하이브리드·디젤차량 기술이 발달하고 모델이 많은 유럽과 일본 차량의 판매는 소폭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 반면 포드 등 미국 차량의 판매는 줄어들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벤츠·BMW 등을 앞세운 독일 차의 경우 국내 소비자의 선호도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보조금 혜택까지 받을 경우 국내 시장에서 덩치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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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살아나는 듯했던 국내 경기가 다시 위축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경기 하강국면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저탄소차협력금제가 전격 시행될 경우 경제 전반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민간소비 침체를 이유로 올해 경제성장률을 0.2%포인트 하향 조정한 3.7%로 제시했다.

◇미국과의 통상마찰 가능성=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의 통상마찰 가능성도 우리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완전한 이행을 위해 자동차 분야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이 저탄소 협력금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자동차 업계가 저탄소차 협력금을 계기로 자국 의회에 대한 압박 수위를 한층 높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포드 등 미국 완성차 업계는 한미 FTA가 한국 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설계돼 무역수지 전반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자동차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환경부가 저탄소차 협력금의 모델로 삼고 있는 프랑스의 '보뉘스-말뤼스' 제도는 사실상 일종의 '비관세장벽'과 같은 성격을 지닌다"며 "TPP를 비롯해 여러 나라와 동시다발적으로 FTA를 진행하면서 도입하기에는 무리가 아니냐"고 설명했다.

◇시행 유보 아닌 대안 가능성도=정부는 대안을 놓고 다각도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이르면 오는 6월 중순에 공청회를 열고 이를 통해 공식 입장을 확정하겠다는 것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법 시행을 한 차례 더 연기하는 것이다. 정부는 법령 해석상 법 개정 없이도 시행을 연기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고 보고 검토작업을 벌이고 있다. 다만 이 경우 환경부를 중심으로 한 환경단체의 강한 반발이 예상돼 조율과정에서 마찰이 커질 우려가 있다.

예정대로 내년부터 저탄소차협력금제를 시행하되 부담금과 보조금을 모두 낮은 수준에서 책정하는 방법 또한 하나의 대안이다. 일단 낮은 수준으로 테이프를 끊어놓고 점차 강도를 더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렇게 제도를 짜더라도 각종 친환경 자동차 기술이 발달한 일본·프랑스 등과 한국의 환경이 달라 충분한 기대 효과는 낼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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