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기업 현주소를 말한다] 해운, 이자 갚느라 투자 언감생심… 조선, 해양플랜트 발목잡혀 비틀

<4> 해운·조선, 활로는 어디에

양대해운사 구조조정 불구 시장침체… 부채비율 껑충

조선3사 해양플랜트 경험부족 등으로 손실 뒤집어써

기간산업 특성 고려 정부차원 정책·금융지원 나서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선박을 건조하고 있다. 해운과 조선산업이 함께 부진한 가운데 정책자금으로 선박을 발주해 국내 해운사에 빌려줌으로써 두 산업을 모두 살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거제도=권욱기자

이달 초 세계 3대 해운사인 프랑스 CMA CGM은 싱가포르 선사 넵튠오리엔트라인스(NOL) 인수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CMA CGM의 세계 컨테이너 시장 점유율은 8.8%에서 11.4%로 뛰어오르며 세계 컨테이너선 시장의 과두 체제를 강화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지난 2009년 파산 직전까지 갔던 CMA CGM이 다시 일어서기까지 프랑스 정부의 도움은 절대적이었다. 프랑스는 채권은행을 통해 5억달러, 국부펀드로 1억5,000만달러를 지원했고 이후 3년간 2억8,000만유로의 유동성을 쏟아부었다. 이는 국가 경제와 안보를 위해 대표 해운사를 살려야 한다는 데서 비롯됐다.

최근 중국 정부는 침체에 빠진 조선·해운업을 살릴 방법을 고민하다 해운사가 노후화한 선박을 해체하고 고연비·친환경 선박을 새로 지을 경우 톤당 1,500위안을 지원하고 있다. 벌크선의 경우 선종에 따라 지원액 비중이 전체 건조비용의 4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운 부문의 효율화를 지원함으로써 조선은 물론 기자재 일감까지 창출했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경제 발전 과정에서 대표적인 효자 노릇을 한 해운과 조선업이 최근 세계 경기 부진과 공급과잉, 경쟁심화로 재무구조가 급속히 나빠지며 침몰 위기에 처했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의 수출입량 대부분(99.7%)을 차지하는 해운업은 핵심 산업일 뿐만 아니라 전시에는 병력과 물자를 실어나르는 제4군(軍) 역할을 맡는다. 조선업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건조력을 보유한데다 직간접적인 고용창출 효과가 커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를 포함한 세계 각국은 해운과 조선업만큼은 단순히 시장 논리에 맡겨두지 않고 정부가 나서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지원해왔다.

올해 다시 해운과 조선업 위기가 불거지면서 이들 산업에 대한 자금지원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앞서 프랑스나 중국처럼 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지원하되 궁극적으로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으로 대표되는 국내 양대 해운사는 지난 2년간 혹독한 구조조정을 펼쳐왔지만 시장이 살아나지 않으면서 고전하고 있다. 한진해운의 경우 소폭 흑자를 이어가고 현대상선은 내년 흑자전환을 노리고 있지만 각각 부채비율이 7배, 10배에 이르는 과중한 빚 부담에 신규 투자는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다. 돈을 버는 대로 이자 갚기에도 급급하다 보니 다른 글로벌 컨테이너선사들이 초대형선을 잇따라 발주하며 경쟁력을 높이는 모습을 그저 지켜만 보고 있다.

원유나 석탄·철광석 같은 원자재를 실어나르는 벌크선 부문 역시 발틱운임지수(BDI)가 추락하면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조선업은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 3사가 올 들어 3·4분기까지 모두 7조원이 넘는 영업적자를 내며 사상 최악의 시절을 보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선 수주 공백을 해양플랜트로 채운 것이 화근이었다. 수주 당시만 해도 세계 최초, 최대 규모 설비로 이름을 날렸지만 경험부족과 잦은 설계변경, 조선사에 불리한 계약 조건으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었다. 유가까지 폭락하며 자금난에 빠진 선주사들이 모든 책임을 떠미는 바람에 '빅3'는 제대로 하소연도 못하고 부실을 뒤집어썼다.

중소형 조선소들은 상황이 더 나쁘다. STX조선해양과 성동조선해양·SPP조선·대한조선 등이 모조리 채권단 관리에 놓여 있으며 주력 선종인 유조선과 벌크선은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극심한 수주경쟁을 펼치고 있다.

한계상황에 놓인 해운과 조선업을 그대로 시장에 맡길 경우 다수 회사가 생존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되는 만큼 업계는 한목소리로 자금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해운업은 코앞의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는 게 급선무다. 구체적으로 금리 수준을 현재 7~10%의 절반인 4% 이하로 낮추고 원금상환을 3년 정도 유예해 해운사들의 숨통을 터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진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운정책연구실장은 "외항선사들이 연간 이자비용만 1조원씩 내는 상황이 바뀌어야 경영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서비스 경쟁력은 높기 때문에 고비만 잘 넘기면 원금은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단기유동성 문제가 해결되면 그다음은 신규 선박 도입이다. 이때 정책금융으로 선박을 발주해 국내 선사에 빌려주는 방식이나 자본력을 가진 화주들의 유보금을 투자재원으로 이끌어내는 방법도 거론된다.

조선업은 이미 대우조선과 STX조선해양·성동조선해양 등에 대한 자금지원이 결정된 가운데 같은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양플랜트 부문에서는 설계능력 확보와 기자재 국산화, 선주사와 대등한 위치에서의 계약 등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된다. 중소형 조선사들의 경우 저가 수주를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궁극적으로는 공급과잉을 이겨내기 위한 구조조정이 요구된다. 조선소별로 많게는 1만~2만명의 임직원을 운용해 지역경제와 밀접한 만큼 구조조정 시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홍 연구위원은 "앞으로 조선업 회복기에 다양한 선박으로 대응하려면 중소조선소 기반도 필요하다"며 "시리즈선 수주로 설계 등 원가를 최소화하고 연구개발(R&D)을 통해 친환경 기술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임진혁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