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2월 1일] <1609> 사이공식 처형


1968년 2월 1일, 사이공의 중국인 거리. 명절을 틈타 월맹군과 베트콩이 '구정 대공세'를 펼친 직후의 혼란 속에서 월남 군인들이 용의자들을 골목으로 끌고 갔다. 지휘관은 응우옌응옥로안(당시 38세). 현역 준장 신분으로 경찰을 책임지고 있던 로안은 상아 손잡이가 달린 38구경 권총을 손이 뒤로 묶인 용의자의 관자놀이에 대고 쐈다. 즉결처형 순간은 뒤따르던 AP신문의 사진기자 에디 애덤스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 전세계에 뿌려졌다.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무수히 많은 이설이 존재한다. 용의자가 로안의 가족을 몰살했다는 설에서 애덤스 기자가 로안에게 훗날 사과했다는 소문, 현장에서 로안이 '부처님도 나를 용서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설까지 그럴듯한 가설과 터무니없는 낭설까지 나돈다. 분명한 사실은 '사이공식 처형'으로 이름 붙여진 사진 한 장이 세계에 반전 여론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이다. 마침 미군이 민간인 300명을 무자비하게 죽였다는 '미라이 학살'까지 폭로되며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1969년부터 단계적으로 철수한 미군이 완전히 빠져나간 1975년, 월남은 패망하고 말았다. 사진 한 장의 힘이 월남전에 투입한 미국의 전비 6,860억달러(2008년 가치 기준)를 녹여버린 셈이다. 희대의 특종을 잡은 애덤스는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사망(2004년) 때까지 세계적 사진기자로 이름을 날렸던 애덤스는 '사진은 절반의 진실을 얘기할 뿐'이라는 어록으로도 유명하다. 결과적으로 국가에 결정적인 해악을 끼친 로안은 월남 패망시 미국으로 망명, 음식점을 경영했으나 평생 기자들의 추적에 시달리다 1998년 죽었다. 엘리트 장성인 로안이 나라를 사지에 몰아넣게 된 요인은 광기일까, 과잉충성일까, 아니면 '재수가 없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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