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을 사고 싶은데 자금은 없고….”
기관투자가들이 매도공세를 지속하며 갈길 바쁜 주식시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하지만 기관 입장에서는 오르는 주가를 쳐다보며 펀드 환매 부담 등으로 주식을 매도해야 하는 사면초가의 처지다.
기관들은 9일 거래소시장에서 1,739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종합주가지수를 7일만에 하락세로 끌어내렸다. 특히 지난 8일 4,500억원 어치를 팔아치우는 등 최근 3일 연속 6,599억원 어치를 순매도했다. 이로 인해 이날 종합주가지수는 전일보다 2.84포인트 하락한 705.50포인트에 마감했다.
외국인이 순매수 행진을 지속하고 개인들이 6일만에 순매수로 돌아서면서 그나마 낙폭을 줄였다.
증권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 미국시장의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고 외국인의 매수세가 이어지고 있어 기관이 매도세를 이어가도 큰 폭의 조정은 나타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 그동안 특별한 숨고르기 없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 지수가 추가조정을 보일 경우 그 동안 총알을 비축했던 개인은 물론 기관의 대기 매수세가 유입되며 상승세에 힘을 실을 것으로 전망했다.
◇사면초가에 빠진 기관=기관 투자가들은 지난 4월 이후 지수가 꾸준히 오름세를 보이고 있지만 상승장세에 동참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는 처지다. 이라크 전쟁이 마무리되기 시작한 지난 5월의 상승장을 개인들이 이끌었다면 6월 이후 상승장은 외국인의 주도세력이었다. 기관은 철저히 소외돼 왔다.
기관들이 이처럼 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원래 주식편입 비중이 높았던 데다 뚜렷한 경기 회복 신호가 나타나길 기다리다가 주식을 살 수 있는 매수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수가 오르면서 일단 원금을 보전하려는 개인들의 환매요구가 늘어나면서 주식을 살 수 있는 주식형 펀드 자금이 줄어드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한 투신사 매니저는 “주식을 사고 싶어도 매수여력이 충분치 않은데다가 최근에는 지수가 700선까지 오르면서 지난해 설정됐던 주식형 펀드의 환매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기환 플러스자산운용 대표는 “한번 만 더 조정이 나타나면 주식을 사겠다는 기관들이 꽤 있다”며 현재 기관들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설명했다.
◇기관, 얼마나 팔았나=기관들은 지난 6월 한달간만 1조3,475억원, 이 달 들어서도 6,294억원 어치를 팔아치웠다. 특히 지난 8일에는 올 들어 최고치인 4,500억원을 팔았다. 지수가 700포인트를 넘어가며 추가랠리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기관은 여전히 보수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최근 기관 매도 물량의 대부분이 프로그램 매물이기는 하지만 이날의 경우 프로그램 매물을 제외하고도 투신권을 중심으로 912억원의 물량이 나와 기관들이 펀드 환매 압력이 시달리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줬다.
◇기관, 보수적 대응 지속되기 어려울 듯=전문가들은 전세계적으로 랠리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관들이 계속 보수적인 대응하기는 힘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최근의 보수적인 대응은 시중 자금이 증시로 유입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만 유동성 랠리가 가시화할 경우 기조 변화가 나타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박경일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 증시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고 글로벌 금융환경이 증시에 우호적으로 변화해 가고 있어 기관 등 국내 투자자들의 보수적인 시장 대응이 오래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학균 굿모닝신한증권 애널리스트는 “외국인 매수세가 이어지며 긍정적인 시장흐름이 지속되고 있다”며 “개인이나 기관 자금이 언제 본격적으로 유입될지 여부가 향후 시장의 추가상승 여부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곤기자 mckids@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