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인들은 누구나 베스트셀러를 꿈꾼다. 또 한때 베스트셀러로 끝나지 않고 스테디 셀러가 되어 10년이 넘어도 독자들이 계속 찾는 책이 되길 원한다. 그러나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베스트셀러는커녕 번번이 투자금 회수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속에서도 예림당은 비교적 베스트셀러, 또는 스테디셀러로 꼽을 만한 책을 꽤 많이 낸 셈이다. 하지만 더러는 사세가 휘청일 만큼 참패로 끝난 책도 있다. 장기간에 걸친 큰 기획물의 실패는 회사 운영에 큰 타격을 주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로 `작은 손 문고`와 `초등백과 뉴리더`를 들 수 있다.
1990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과 유럽 여러 나라를 돌아보고 나는 새로운 문고 출판을 꿈꾸며 돌아왔다.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가는 곳마다 책을 든 이들이 눈에 띄었다. 문고본 형태의 책이었다. 선진국 사람들의 생활화된 독서 습관 뒤에는 이처럼 값싸고 휴대에 편리한 문고본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들이 들고 다니는 책을 눈여겨보면서 들르는 서점마다 문고들을 조사했다.
당시 나는 청소년도서출판협의회 회장으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독서 증진 운동을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었다. 어떻게든 청소년들로 하여금 손에 손에 책을 드는 분위기를 이뤄내고 싶었다. 나는 돌아오자마자 회의를 소집하여 획기적인 어린이용 문고본을 시작해 보자고 했다. 그러자 편집부나 영업부에서 모두들 반대했다. 그것이 어떤 획기적인 체제를 갖추든 간에 성인물과 아동용 시장에서 이미 시들어 버린 문고본을 낸다는 자체가 무모한 모험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출판은 돈벌이를 좇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독자들을 위해 꼭 필요한 책이라면 돈은 벌지 못해도 최소한 제작비만 건질 수 있다면 시도할 수도 있다.”
이렇게 `작은 손 문고`를 기획하게 되었다. 문고본의 기본 이미지가 작은 책에 글자가 깨알같이 들어찬 것이었지만 우리가 시도한 것은 기존 책보다 그림도 많이 들어가고 글자도 크며 내용에 따라 다양한 편집 디자인이 시도되었다. 그러다 보니 책은 작지만 편집 디자인비가 일반 단행본보다 더 투입되었다. 종류도 다양성을 꾀해 명작뿐만 아니라 만화가를 꿈꾸는 어린이들에게 만화의 기본작법을 알려주는 만화교실 등 취미 실용서와 어린이들에게 영원한 흥미거리인 공포물도 포함시켰다.
우리 나라에서 문고본은 원래 성인용으로 시작되어 6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성인용처럼 작게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어린이용 책도 무슨 무슨 문고란 이름아래 시리즈로 내는 출판사도 있었다. 1991년 4월 키다리 아저씨를 비롯해서 1차로 20 권을 내고 소년지 등 전면광고와 더불어 전용 판매대와 함께 서점에 보냈다.
권당 정가는 2,500원이었다. 그러나 서점 반응은 `시큰둥`이었고 독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작은 손 문고`는 참담한 실패작이었다. 결국 이후 제작에 걸려있던 6권을 끝으로 야심 찼던 계획은 막을 내렸다. 나는 처음 이 실패를 납득할 수가 없었다. 비록 문고본이긴 했지만 흠잡을 데 없이 정성을 다해 만든 책이었고 더군다나 판매가는 보통 아동도서의 절반 가격이었다. 그런데 왜 실패했을까?
분석해 본 결과 실패의 가장 큰 요인은 작은 판형에 있었다. 당시 커지고 화려해지는 추세에 있던 아동물 경향을 역행한 것이 무리수였다. 값싸게 대량 보급하겠다는 의지였지만 판형이 작다 보니 시선을 끌지 못했고 책값이 싸서 이윤 폭이 적다 보니 서점에서도 판매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나중에 작은 손 문고 중의 상당수를 일반형으로 다시 출간하였는데 다수가 현재까지 쇄를 거듭하고 있는 것을 보면 패인은 확실한 셈이다. 요즘 유럽에서는 문고본이 예전보다 활성화되어 서점의 전용공간을 늘려가는 추세이다. 선진국의 변함없는 독서생활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 아닌가 싶고, 점점 외형만 화려해져 가는 국내의 출판 경향에 조금은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박태준기자 jun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