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기본적으로 충격을 싫어한다. 그 중에도 불확실성을 증대 시켜 미래에 대한 예측을 어렵게 만드는 인위적 충격은 독(毒)이다.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은 사전에 막을 수 없다. 하지만 피해가 크다 해도 지나고 나면 복구돼 특별히 불확실해질게 없기 때문에 인위적인 충격에 비해 경제에 미치는 폐해가 크지 않다. 하지만 세상사가 경제만 잘 되라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정치 지도자들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매우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닐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오는 12월 중순경으로 예정된 대통령 재신임에 대한 투표는 충격적인 사안이다. 국민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지 경제활동을 하기 때문에 모두가 경제인이라 볼 수 있다. 경제인의 시각에서 보면 좋든 싫든 선거가 끝나고 나면 새 정부가 취임하여 5년간 국정을 수행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기대이다. 즉, 선거가 끝나면 결과에 대한 개인적인 호(好), 불호(不好)를 떠나 일단 향후 5년간 누가 대체적으로 어떤 식의 정책을 펼칠 것 이라는 정책환경에 대해서 예측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선거가 끝나면 정책환경이라는 중요한 불확실성의 원천이 제거되기 때문에 경제는 특정후보를 선호하기보다 끝난 선거를 제일 좋아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투표는 끝난 줄 알았던 선거를 다시 하는 형국이다. 여러 정치적인 고려 때문에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이런 결정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물론 경제만을 생각하면 이런 재신임을 묻는 것과 같은 일이 없는 게 제일 바람직하다. 여기에 수반되는 경제적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경제는 올들어 심각한
▲투자부진
▲고용부진
▲소비 부진의 내수 악순환을 겪고 있다. 내수부진이 장기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수출이 호조를 보이며 경기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 동안 수출 호조세 지속의 여파로 일부 기업들이 점차 신규 투자와 고용을 늘려나갈 것으로 기대되었다. 특히 9월 수입 중 기계류 수입이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며 일각에서는 점진적인 투자회복에 대한 기대가 일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투자심리가 냉각돼 경기회복 시점이 지연될 것으로 우려된다. 앞으로 사태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가를 관망 하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 될 것이다. 물론 한국에 투자를 고려하던 해외투자가도 비슷한 입장을 보일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국민투표 시행시점을 빨리 잡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재신임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온다면 협소한 정당을 기반으로 한 현 정부에 힘이 실려 보다 강력한 정책추진이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재신임을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여러 정책현안에 대한 포괄적인 추인으로 해석한다면 경제가 어려위 질 가능성이 크다. 올해 내수부진이 이렇게 악화 된 데에는 정책의 혼선 등 정부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기 때문이다. 재신임 된다면 오히려 그 동안 새 정부 출범이후 제기됐던 아마추어적 좌충우돌이라는 비판을 겸허히 교훈 삼아 경제정책의 틀을 정비하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체계적으로 원점에서 검토하는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 국민소득 2만달러와 같이 임기 내에 추진할 큰 경제정책의 밑그림을 제시하고 계속적으로 국민들을 설득하여야 할 것이다.
불신임의 경우는 그에 따른 혼란이 클 것으로 생각된다. 이 경우 작년 12월 선거, 올 12월 재신임 투표, 내년 4월 선거 등으로 정부를 바꾸는 선거를 약 2년 내에 세 번 하는 모양이 된다. 과거 정치적인 불안이 극심한 남미 국가들을 보고 `바나나 공화국`이라고 폄하하는 표현이 생겼다. 우리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외부의 시각을 받게 될지 모른다. 물론 선거 여러 번 한다고 나라가 망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의원내각제를 시행하는 나라에서는 잦은 선거가 흔하다. 하지만 우리의 겨우 고정된 임기를 보장하는 대통령제를 시행하고 있어 대선이 있으면 관련된 불확실성이 증대하기 때문에 어찌하던 경제는 고생길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만약 그런 상황이 정말 안정된 정부를 뽑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길게 보아서 꼭 손해는 아닐 것이다. 물론 그런 결과에 대한 보장도 없다. 설령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작금 심각한 내수부진으로 멍든 우리 경제가 밝게 피어나는 시점이 늦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허찬국(한국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센터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