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 정치권이 9일 정무위에서 처리한 저축은행 피해자 구제 특별법은 다른 예금자의 돈을 털어 저축은행 피해자를 구제하겠다는 발상이다. 당연히 정부와 금융권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예금보호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요, 지역 민심에 기승하는 비경제적 행위다.
'저축은행 피해자 구제법'은 '보상기금'을 새로 설치해 5,000만원 초과 예금자와 후순위채 투자자의 피해액을 보상하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에 7,000만원을 예금했다면 5,000만원 초과 금액인 2,000만원의 최소 55% 이상인 1,100만원에 대한 보상을 의무화한 것이다.
구제 대상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문을 닫은 18개 저축은행의 5,000만원 초과 예금자와 후순위채 투자자 8만2,391명이다. 총 보상 규모는 1,025억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재원은 은행ㆍ보험ㆍ증권 등 각 업권의 예금보험금 45%와 저축은행 예금보험금 100%, 정부출연금(1,000억원 융자)으로 구성된 '저축은행 특별계정'이다. 당초 국회는 정부출연금과 부실책임자의 과태료ㆍ과징금ㆍ벌금 등 국가재원을 보상재원에 포함시킬 예정이었으나 국민여론을 의식해 막판에 제외했다. 저축은행 분식회계로 과오납된 법인세 환급금, 금융기관들이 금융감독원에 납부하는 감독분담금도 재원에 포함됐다.
하지만 여기에는 '꼼수'가 숨어 있다. 국회는 정부 재원 대신 저축은행 특별계정에서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했으나 현행 예금자보호법은 특별계정에 정부출연금을 투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날 소위를 통과한 '구제법'에는 정부 출연금이 빠졌으나 특별계정을 통해 출연금이 들어갈 여지가 남아 있는 것이다.
정부 출연금은 결국 국민들이 십시일반 납부한 나라의 '세금'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법문에는 정부 출연금이 빠져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투입될 수 있다"며 "그야말로 '여의도발 나꼼수'"라고 말했다.
실제 세금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일반 국민의 피해는 불가피하다. 특별계정의 재원은 은행ㆍ보험 등 각 업권별 예금자들의 예금으로 구성된다. 수많은 은행 예금자와 보험 가입자가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쌓아 둔 예보기금을 당사자의 동의조차 받지 않고 제멋대로 끌어다 저축은행 피해자에게 쏟아 붓는 셈이다.
재산권 침해에 따른 위헌 논란이 야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감독분담금도 문제다. 금감원의 예산인 감독분담금을 보상재원으로 쓰면 결국에는 다른 금융회사의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는 일반 국민의 피해로 귀결된다. 예금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대두된다.
이런 식으로 국회가 피해예금자들을 보상해준다면 앞으로 예금자들은 금융기관의 건전성 등은 따져보지 않고 높은 금리만 ?아다닐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번 구제법이 예금보호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며 한목소리로 반대하고 있다. 5,000만원 이상 예금보호는 외환위기 당시 때 유일하게 예외가 허용됐다가 2002년 1월 재도입 이후 10년간 한번도 깨지지 않았다. 특히 후순위채 채권자까지 예금자들과 동일하게 보호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이 법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부산 지역 정치인들이 '금배지'를 유지하기 위해 일반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겠다는 발상이다. 강도짓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