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회계사 실무수습제 개선해야

서태식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공인회계사 적정 선발인원에 대한 논란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지난 2000년까지 매년 500명씩 선발해오다가 그 다음해부터 갑자기 1,000명씩으로 늘려서 문제가 된 것이 아직도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회계에 관한 국제적 신인도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량선발 그 자체보다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할 실무수습 제도를 만들어 사회문제를 풀려고 했던 것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이다. 그동안 합격자 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학계가 대변했고 갑자기 늘리면 안된다는 입장은 공인회계사 업계가 대변해왔다. 이 같은 상반된 주장에 대해 사람들은 그 의도를 순수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학계는 우선 학생들을 많이 합격시키고 보자는 것으로, 공인회계사 업계는 진입장벽을 쳐서 기득권을 보호하자는 속내가 있는 것으로 비쳐져왔던 것이다. 그 가운데서 정부는 ‘우수 회계인력을 사회에 널리 보급해야 한다’면서 학계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엉뚱한 데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개업하자면 자격시험에 합격한 후 일정 기간 실무수습을 받아야 한다. 국제회계사연맹의 기준은 회계법인에서 3년간 엄격한 실무수습을 받게 돼 있다. 우리나라도 그동안 합격생의 대부분이 회계법인에서 전문적인 실무수습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1,000명 선발 이후 합격생의 3분의1 정도가 무려 14,000개가 넘는 웬만한 기관(회계법인이 아닌)에서 1~3년간 근무하면 실무수습 과정을 마친 것으로 인정받게 됐다. 전문가 실무수습 교육이 비전문기관에서 그것도 전문적 지도자(mentor)의 지도 없이 행해지는 것이다. 의사시험 합격자에게 병원경험 없이도 개업 허가를 해주는 것과 같은 처사다. 국제적으로 회계 투명성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분식회계 같은 기업 차원에서의 투명성 요소도 있지만 세계 기준과 다르게 정하고 운영하는 제도적인 것도 있다. 투명성 지수를 산정할 때는 오히려 후자가 수십 배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몇 년 전 우리나라의 회계불투명지수가 조사 대상국 중에서 1등을 한 것도 정부에서 회계를 규제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제도적으로 글로벌스탠더드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회계의 투명성이 떨어지는 것이 오늘의 세계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각국은 자국의 기업회계 기준을 각자 제정해 사용해왔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나라가 자국의 기준 대신 국제 회계기준으로 바꿔 사용하고 있다. 미국 회계기준이나 국제 회계기준 중 어느 하나를 채택하지 않는 나라는 회계 불투명국이 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여러 면에서 국제 기준과 달리하고 있다. 회계사 수습제도도 그중 하나이다. 올해 중에 국제회계사연맹으로부터 점검받게 돼 있는데 큰일이다. 선발인원을 갑자기 2배로 늘리면서 전문적 실무수습을 받을 수 없게 된 수백명의 합격자가 ‘정부에서 합격을 시켰으면 실무수습도 정부에서 책임져라’고 하면서 붉은 띠를 두르고 집단 행동을 하니 이에 밀려서 ‘어지간한 곳 아무 데나 취직해서 한 삼 년 지나면 실무수습을 한 것으로 처주겠다’며 수습 기관을 대폭 늘린 것이 오늘의 현상이 됐던 것이다. 합격자 수를 2배로 늘릴 때의 의도는 고급 회계인력을 많이 양성해 사회 곳곳에 고루 공급하겠다는 것이었으나 결과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외부 감사대상 기업에서 회계사 시험 합격자를 채용하면 그 기업이 수습기관이 되고 수습기간이 끝나면 개업하기 위해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기업이 회계사 개업준비 기관이 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히 회계사 시험 합격자의 채용을 꺼리게 되는 것이다. 어렵게 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도 회계법인이나 일류 기업에 취직하지 못한 합격자는 사회적으로 천덕꾸러기가 되고 이를 본 후배 학생들에게는 공인회계사가 매력 없는 자격증이 됐다. 자연히 매년 시험응시 인원이 줄어들고 있다. 고급 회계인력을 사회에 많이 공급하겠다는 당초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회계인력은 다른 방법으로도 많이 양성되고 있다. 민간자격사 제도도 있고 회사마다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별도로 많이들 가르치고 있다. 굳이 공인회계사 자격자를 채용하지 않아도 회사 실정에 맞는 우수 회계인력을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 공인회계사 자격시험은 회계사업을 위한 시험이다.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 실무수습 제도는 하루속히 개선돼야 한다. 그리고 야심만만한 우리의 젊은 시험 합격자를 천덕꾸러기로 만들지 않는 선에서 합격자 수를 재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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