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과 옛 삼성물산이 합병하는 과정에서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됐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은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한 관련 법 집행의 가이드라인이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순환출자 고리 안에 있던 법인이 고리 밖에 있던 법인과 합병해 기존 순환출자 고리 내에서 추가 순환출자와 같은 효과가 발생한다면 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내부적으로 부실 계열사 구조조정, 사업재편을 비롯해 3세 승계 등을 도모하고 있는 대기업 그룹 입장에서는 지배구조 강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순환출자 문제를 반드시 풀어야만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공정위, 합병 따른 추가 출자분 해소해야=순환출자는 'A사→B사→C사→A사' 방식으로 기업 총수가 적은 지분으로 많은 계열사를 소유할 수 있는 구조다.
제일모직과 옛 삼성물산 합병 후 순환출자 고리가 10개에서 7개로 줄어든 가운데 문제가 된 것은 순환출자가 강화된 3개 고리다. 공정위는 '생명보험→삼성전자→삼성SDI→제일모직→생명보험' '화재보험→삼성전자→삼성SDI→제일모직→생명보험→화재보험'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에서 추가적인 계열 출자가 발생한다고 판단했다.
합병으로 인해 삼성물산 주식 404만주(2.1%)와 500만주(2.6%)가 삼성SDI의 추가 출자분으로 드러난 것. 공정위는 합병 과정에서 신주배정·구주취득시 발생하는 추가 출자분 중 가장 출자분이 큰 것만 해소하면 된다고 밝혔고 이에 따라 삼성은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2.6%)를 매각하면 된다. 공정위는 "앞으로 대기업 그룹 계열사 간 합병을 통해 다양한 순환출자 변동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번에 마련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법 집행의 통일성과 예측 가능성을 제고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업재편, 승계 등 앞둔 대기업 그룹 촉각=공정위가 지정한 62개 대기업집단 가운데 순환출자 구조가 있는 곳은 삼성·현대차·롯데 등 모두 8곳(10월 말 기준)이다. 순환출자 고리 수는 94개에 이른다. 롯데가 67개로 가장 많고 삼성(7개), 영풍(7개), 현대차(4개), 현대산업개발(4개)이 그 뒤를 잇는다.
재계는 이번 공정위 결정에 촉각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다. 경기침체에 따른 사업재편, 후계 승계 작업 등이 맞물리면서 합병 등 구조조정 수요가 앞으로 많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특히 이번 삼성 사례와 비슷한 시나리오로 진행될 개연성이 있는 곳으로 현대차 그룹 등을 꼽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크게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로 이뤄져 있다. 증권가에서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그룹 승계 시나리오로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의 합병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이 경우 순환출자 고리 밖 글로비스와 고리 내의 모비스의 합병으로 기존 순환출자 고리 강화에 해당된다. /세종=이상훈·이태규기자 shle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