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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반발·위헌소지 불구 시행… 틈새 노린 기형적 상품 급성장
할부금융 점유율 ↓·수수료 ↑… 현대·기아차 수익성에 직격탄
수수료 1.5% 이하로 내릴땐 체계 흔들려 당국 강경 고수
펄펄 끓는 대형 가마솥이 등장하고 꺾이고 잘려나간 신용카드들이 자루째 솥 안으로 한가득 쏟아졌다. 지난 2011년 10월18일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범외식인 10만 결의대회'에서 벌어진 솥단지 시위의 한 광경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다음해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거물급 정치인들은 모두 이 자리에 얼굴을 내밀었다. 자영업자들은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를 목놓아 외쳤다. 당시 최고 수수료는 4.7%에 달했다. 마침 미국에서는 '아큐파이 월스트리트' 운동까지 휩쓸고 지나간 터라 탐욕스런 금융자본에 대한 적개심은 어느 때보다 강했다.
이 같은 정치적 배경을 안고 탄생한 것이 지금의 신용카드 수수료 체계다. 금융당국은 2012년 35년 만에 수수료 체계를 전면 개편했다. 연 매출 2억원 이하 중소 가맹점에 대한 신용카드 수수료를 1.5%까지 낮췄다. 반면 연 매출 1,000억원 이상 대형 가맹점에는 '적격비용' 이하의 수수료율 요구를 금지시켰다. 이에 따라 협상력을 무기로 1%대 초반까지 떨어졌던 대형 가맹점의 수수료는 2% 내외 수준까지 올라갔다. 카드업계는 물론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정부가 적정 수수료율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며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비판했으나 결국 법은 시행됐다.
자동차 할부금융에 카드사가 끼어드는 복합할부라는 기형적 상품은 이 틈새를 파고들며 고속 성장했다.
2010년 8,654억원이었던 복합할부 시장 규모는 지난해 4조5,906억원으로 4배가 넘게 성장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형가맹점의 수수료가 예전처럼 낮은 상태였다면 결코 생겨날 수 없었던 상품"이라며 "가장 비싼 소비재인 자동차는 카드사들이 복합할부라는 기법을 적용해 중간에서 수익을 취득하기에 딱 맞는 상품이었다"고 말했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 결국 시장에 '돌연변이'를 낳은 셈이다.
이렇게 커진 복합할부 시장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현대·기아차가 됐다. 현대캐피탈의 현대·기아차 할부금융 점유율은 2011년 86.6%에서 지난해 74.7%로 크게 줄어들었다. 여기에 더해 가맹점 수수료로 한 해에 수백억원의 돈이 빠져나간다. 현대차 매출 규모에서 보면 작은 숫자일 수도 있지만 내수 점유율이 악화되는 현대차는 수익 개선에 사활을 걸고 있다. 여기에 재계의 숙적인 삼성이 카드사를 통해 복합할부를 밀고 있다는 것도 현대차가 당국에 맞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이유다.
금융당국도 복합할부가 기형적인 구조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더 물러날 방법이 없다. 벼랑 끝이나 마찬가지다. 현대차의 수수료를 1.5% 이하로 내리게 되면 영세 자영업자들보다 국내 최대 대기업의 수수료가 낮아진다. 2012년 개편된 여신전문금융업법의 근간을 완전히 뒤흔드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현대차에 대해 검찰 고발, 공정위 제소, 방카 25%룰 적용 등 다소 무리해 보이는 카드를 잇따라 내놓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여기서 현대차의 요구를 들어주게 되면 이마트 등 대형마트들이 추가로 수수료 인하 카드를 들고 나올 수 있다"며 "그런 상황이 오면 수수료 체계가 자체가 완전히 흔들리는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당국은 현대차의 요구를 들어줘 대형가맹점의 수수료가 낮아질 경우 결국 카드사들이 대출 금리 등을 올릴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연쇄적인 소비자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를 검찰에 고발하는 방안에 대한 법률검토에 착수한 상태다. 하지만 금융계에서는 현대차 압박을 통한 일시적 봉합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여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의 복합할부 문제는 겉으로는 현대차와 국민카드의 갈등이지만 근본에는 정부의 과도한 가격 개입이 자리 잡고 있다"며 "단순히 협상 주체들을 어르고 달래 봉합하는 수준을 넘어 근본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