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9ㆍ11 하면 누구나 5년 전의 그 끔찍한 테러 장면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지난주 9월11일을 지나면서 문득 지난해 같은 날 뉴욕으로부터 전해졌던 부고 하나를 떠올리게 됐다. ‘월가의 전설 존 슬레이드 97세로 타계.’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삶을 잠시 들여다보고자 한다.
존 슬레이드(John H Slade)는 1908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한스 슐레진저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이 확실시되던 필드하키 골키퍼였다. 그러나 히틀러 정권이 유대인에 대한 탄압을 본격화하자 그는 단돈 50달러를 품에 넣고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가 독일에서 잠시 일했던 은행의 상사가 써준 추천서 한 장을 들고 베어스턴스의 창업자 조셉 베어를 찾아간다.
영어 한마디 하지 못했던 그는 주급 15달러짜리 주문전달 심부름꾼으로 채용됐는데, 매일 뉴욕항에 나가 독일에서 이주해오는 사람들을 고객으로 유치하는 등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회사에서 인정받았고 4년 만에 가족들을 모두 미국으로 이주시킬 만큼 자리를 잡게 된다.
그는 1936년 3월에 입사해 2005년 9월 영면하기 직전까지 현직 트레이더로서 일하며 근 70년을 근속했다. 그 사이 그가 회사를 떠나 있었던 것은 1942년 2차대전 참전을 위해 미군에 자원 입대했던 기간과 1948년 미국 필드하키팀 주전 골키퍼로서 런던 올림픽에 참가했던 기간이 전부다. 그동안에도 베어스턴스는 그에게 직원으로서의 신분과 혜택을 중단하지 않았다.
2003년 5월30일 95세 생일을 맞은 그에게 월가는 최고령 현역에 대한 존경과 축하의 표시로 뉴욕증권거래소의 폐장 벨을 타종하는 영광을 선물했다. 그러나 그가 단지 장기근속만으로 월가의 전설이 된 것은 아니다. 그는 어김없이 매일 오전5시30분에 기상해 각종 자료를 정독하며 하루를 시작했는데, 절도 있는 자기계발 노력을 통해 정립한 확고한 시황관을 바탕으로 매주 25쪽에 달하는 개인 정보지를 작성해 2만여명의 고객에게 배송한 것으로 유명했다. ‘John Speaking’이라 명명된 그의 정보지는 특히 90년대 후반 닷컴 주식의 거품을 예리하게 경고함으로써 큰 인기를 끌었다.
34세의 나이로 전쟁에 자원 참전해 무공훈장까지 받을 정도의 전공을 세우고 청년시절 이루지 못한 올림픽 출전의 꿈을 40세에 제2의 조국에서 이뤄낸 그의 열정과 집념, 그리고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도와준 베어스턴스에 70년 근속으로 보답한 그의 의리와 늘상 “나에게 은퇴란 없다”고 했던 그의 철저한 자기관리 철학은 잦은 이직을 마치 장식처럼 여기며 40대면 조로현상을 겪는 많은 증권인들에게 커다란 시사점을 남겨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