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5월4일] 헤이마켓 사건

‘쾅!’ 폭음과 함께 시위현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경찰 7명이 바로 죽고 60명이 다쳤다. 흥분한 경찰의 난사로 노동자 수십명도 총에 맞았다. 사망자는 모두 11명. 1886년 5월4일 미국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에서 발생한 일이다. 헤이마켓 사건은 현대 노동운동사의 획을 그었다. 급진주의 성향을 띠던 미국 노동운동이 온건보수로 뒤바뀌었다. 노동절(메이데이ㆍ5월1일)의 유래도 여기서 나왔다. 헤이마켓 광장에 결집한 노동자들의 요구는 ‘8시간 노동’. 5월1일부터 시작된 시위에 자본가들은 꿈적도 안 했다. 5월3일 경찰의 발포로 여자 어린이를 비롯한 6명이 사망하자 순식간에 시위대는 30만명으로 불어났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터진 헤이마켓의 폭탄은 모든 걸 바꿨다. 주요 언론은 과격한 노동운동을 성토하고 노조 지도자들은 줄줄이 붙잡혔다. 회원 수 70만명을 자랑하던 ‘노동기사단’ 조직도 국가전복세력으로 찍혔다. 미국판 ‘공안정국’ 아래 노조 지도자와 무정부주의자 4명의 목에 밧줄이 걸렸다. 전세계에서 밀려든 감형 청원도 소용없었다. 사건은 자본가들의 자작극이라는 사실이 7년 뒤 밝혀졌지만 노동운동의 흐름은 이미 타협을 중시하는 ‘미국노동총연맹(AFL)’으로 완전히 넘어간 뒤였다. 미국이 급진적인 노동운동을 피할 수 있었던 계기가 헤이마켓 사건이었던 셈이다. AFL은 지금도 미국 최대의 노동조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헤이마켓 사건은 노동절도 낳았다.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1889년 7월 파리에서 열린 제2인터내셔널 창립대회에서 이 사건과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5월1일을 ‘만국노동자 단결의 날’로 정한 것이 메이데이의 유래다. 정작 미국은 9월 첫째 월요일을 노동절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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