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슬레이트와 삼겹살

삼겹살을 맛있게 굽는 비결로 숯불ㆍ자갈구이 등 온갖 방법이 동원되고 있지만 모닥불 위에 슬레이트를 걸쳐놓고 삼겹살을 구워먹던 추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않을 것이다. 기름이 쏙 빠진 기막힌 삼겹살을 만들어준 최고의 불판 슬레이트. 하지만 슬레이트가 석면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1급 발암물질로 경원시되고 있는 석면이 그동안은 열에 강하고 내구성이 좋아 ‘기적의 광물’로 각광을 받았었다. 우리나라는 지난 70~80년대부터 다량의 석면을 수입해 건축자재, 자동차 마찰재 등에 사용해왔다. '죽음의 먼지' 석면으로 만들어 특히 ‘새마을운동’ 시기에는 초가지붕을 없애고 슬레이트 지붕을 얹는 것이 새 시대의 상징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보다 앞서 석면을 사용했던 유럽ㆍ미국ㆍ일본 등에서 석면은 ‘죽음의 먼지’가 돼 돌아오고 있다. 인체로 들어간 석면은 30~40년간 잠복했다가 폐암ㆍ악성중피종 같은 치명적인 질병을 불러일으킨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석면에 의한 직업병을 인정받은 사람은 43명이지만 과거 석면 수입량, 질병의 잠복기를 생각하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70~80년대 프랑스 해군을 대표하던 항공모함 클레망소에는 250톤의 석면이 들어 있는데 폐기장소를 찾지 못하고 대서양과 인도양을 떠돌다 결국 올 5월 본국으로 귀환했다. 유럽연합(EU)의 모든 국가에서 석면을 수입하거나 폐기하지 못하게 돼 있는데다 인도 등에서는 환경감시단체 그린피스가 클레망소의 폐기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에서는 석면의 공포가 현실로 다가와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위험한 물질을 당장 없애버리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풀어야 할 과제가 있는데, 하나는 석면의 가격과 성능을 대체할 물질의 개발이요, 다른 하나는 이미 사용된 석면함유 제품들의 적절한 처리이다. 노동부는 1월 ‘석면에 의한 근로자 건강장해 예방대책’을 마련해 단계적으로 석면함유 제품의 사용을 금지하고 오는 2009년까지 모든 석면함유 제품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조금 더 싸고 성능이 좋을 수 있다는 이유로 석면사용 금지를 마냥 미룰 수만은 없다는 판단을 한 결과다. 90년대 수입된 석면의 82%가 슬레이트ㆍ천장재ㆍ칸막이 등 건축자재로 사용됐다고 한다. 이미 건축물의 일부가 된 석면함유 자재의 처리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고형화된 자재에서 석면이 저절로 떨어져 날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기존 건축물을 철거하거나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석면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석면노출 방지를 위해 석면 해체ㆍ제거 작업을 사전허가 대상으로 하며 작업시 따라야 할 조치기준을 별도로 정하고 있다. 앞으로는 건축물의 철거, 증ㆍ개축 등 착공 신고시 건축물 석면함유 여부를 신고해야 한다. 이런 이중ㆍ삼중의 조치는 건축업 종사 근로자만이 아니라 근로자의 가족, 공사장 인근 주민 등 모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근로자 스스로가 석면의 위험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전문 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노동부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이다. 함유제품 퇴출 국민들도 나서야 이밖에도 석면분석기관 확대 등 인프라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타 부처와 연계해 종합적인 제도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석면의 위험성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국민 스스로 석면함유 제품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고 불법 석면 해체 및 제거를 감시해나가야 한다. 그래야 EU나 가까운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석면의 집단적 폐해를 예방할 수 있다. 슬레이트를 없앤다고 해서 지금까지 맛있게 구워먹던 삼겹살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석면이 없는 안전하고 더 좋은 불판으로 우리 가정의 웃음을 요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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