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지혜를 닦고 이름을 떨쳐라-일기(日記)




출세와 입신양명(立身揚名)을 바란다면 본보기로 삼을 사람과 수단이 있다. 새뮤얼 피프스(Samuel Pepys·1633~1703). 양복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나 실력 하나로 영국의 해군 대신까지 오른 인물이다. 죽어서는 더욱 더 이름을 날렸다.

일기 문학의 개척자라는 명성으로 기억되는 그의 일기가 시작되는 시점은 1660년 1월 1일. ‘신의 은총으로 지난해 말에는 감기 한번 안 걸리고 건강하게 지냈다. (…)’ 이렇게 시작된 일기는 지나친 독서로 실명 위기를 맞은 1669년 5월 말에서야 멈췄다.


만 9년 5개월보다 훨씬 긴 기간을 담은 일기도 없지 않지만 피프스는 근대 일기문학의 효시로 손꼽힌다. 125만개 단어로 이뤄진 피프스의 일기는 역사가들에게도 소중한 자료다. 당대의 실상을 연구하는 데 피프스의 일기만큼 생생한 기록도 없다.

흑사병의 창궐(1665)과 런던 대화재(1666), 2차 영란전쟁(1665~1667) 등 굵직 굵직한 사건들이 일기 속에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특이한 점은 누가 볼세라 자신만 아는 암호로 일기를 썼다는 점. 하긴 그럴 만 했다. 국왕의 애첩을 보고 느낀 성적 충동과 가정부와 관계까지 기록했으니까.

과학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던 ‘뉴턴의 시대’를 살았던 그는 처음 구한 망원경에 들떴던 경험을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교회로 달려가 아름다운 여인들을 관찰하는 기쁨을 누렸다.’ 중국산 차(茶)에 대한 최초의 영문 기록도 그의 일기에 담겼다. 인도산 면직물(켈리코)을 둘러싼 갈망과 영국 모직업계간 갈등도 엿볼 수 있다.


피프스는 영국의 해군사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해군성에 근무하던 29년간 주요 전함은 두 배, 함포와 수송력은 각각 세 배로 늘어났다. 능력도 없으면서 고위 계급을 요구하는 귀족 출신 장교들을 걸러내기 위해 인성 및 적성검사를 포함한 승진시험도 처음 도입해 대영제국 해군의 기초를 닦은 인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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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제도 없던 시절 국부를 째는 수술에 자원해 결석을 빼낸 일화로도 유명하다. 중력의 법칙을 발견한 천재 과학자 아이작 뉴턴의 대표저술 ‘프린키피아’의 표지에도 하원의원이자 왕립협회 회장이었던 피프스의 이름이 들어 있다. (피프스는 9살 아래인 뉴턴과 절친한 친구로 지냈다.)

경매시장에 나온다면 수백억원을 호가할 피프스의 일기는 모교인 케임브리지대학 도서관에 기증한 장서 3,000여권과 함께 전해져 내려온다. 여러 분야에서 이름을 날렸던 것도 광범위한 독서 덕분이다. 일기에도 책이 너무 많아 걱정하고 대화재 때문에 싸게 살 수 있었던 책을 비싸게 구입했다고 불평하는 대목도 나온다.

일기 속에서 피프스는 아직도 살아 숨쉰다. 암호를 푸느라 1825년에서야 출간된 피프스의 일기는 영국에서 성경 다음의 스테디셀러라는 자리를 지키고 있다.

웬만한 지식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기만 해도 습득할 수 있는 세상, 인터넷이 모든 정보를 전달해주는 시대지만 전통적인 읽기와 쓰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거창한 학위가 없어도 논리적이고 사리가 분명한 사람들 가운데는 일기 쓰기가 습성화한 경우가 많다.

신년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면 펜을 드시라. 머리로 생각하고 손으로 쓰는 일기만큼 뛰어난 자기계발과 성찰의 수단도 없다. 현재 시점에서 지나간 시간을 쓰는 일기는 미래를 밝혀주는 등불이다.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권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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