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응답하라 1982’…교복·두발 자유화




겨울의 한복판에서 10대의 환성이 터졌다. 교복과 두발 자유화가 발표됐기 때문이다.

1982년 1월 4일, 문교부는 전국 중·고교에 머리카락의 길이와 형태를 학생 자율에 맡기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다만 교복은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자유화하기로 일정이 잡혔다.


교복과 두발의 자유화는 청소년 문화를 급격하게 바꾸었다. 원색과 각양각색의 물결이 학교를 휩쓸고 아이들은 부모들에게 유명 메이커 운동화를 사달라고 졸랐다. 부모의 재력이 학생들의 외양을 차이 짓고 끼리끼리 문화와 위화감을 심화하는 부작용이 없지 않았으나 서슬 퍼런 권력을 휘둘렀던 5공 초기여서 누구 하나 입을 못 열었다.

‘까까머리 남학생, 단말머리 여학생’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근대 군사제도를 짜내는 데 국력을 쏟았던 프로이센이 비상시에 10대 학생들을 전장으로 신속하게 투입하기 위해 19세기 군복과 비슷하게 만든 데서 유래했다는 검정색 교복과 금장 단추며 호크도 없어져 갔다.


획일적으로 강제된 ‘자율화’의 역설이 가져온 반작용이라 할까! 교복의 생명력은 질겼다. 자유화 2~3년이 흐른 후부터 교복을 착용하고 두발을 제한하는 학교가 늘기 시작했다. 특히 ‘유명 대학에 학생들을 많이 보낸다’는 서울 강남 지역 고등학교들이 면학 분위기를 들며 자유화 대신 규정을 완화하자 전국의 학교가 그 뒤를 따랐다.

관련기사



학부모들도 완전한 자율화보다는 학교별 규제에 호응을 보냈다. 여기에 교복업자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탓인지 교복은 대부분의 학교가 채택하고 있다. 프로이센을 거쳐 일본이 전해준 군복 스타일 교복과 해군에서 유래됐다는 여학생의 세일러복은 박물관이나 방송국의 소품 창고에 틀어박힌 지 오래다.

머리가 길다고 훈육지도 선생님의 ‘바리깡’에 머리에 ‘고속도로’를 이고 다녔던 10대가 대학에 입학해서는 장발 단속을 피해 골목으로 도망 다니던 시절도 빛 바랜 흑백사진으로, 기억의 조각으로 굳은 오늘날. 아이들의 행복도와 희망을 생각한다. 교복의 다양화와 두발의 부분적 자유화를 누리는 요즘 학생들은 부모 세대에 비해 자유롭고 행복할까.

중학생이 되기 전부터 학원 순례에 시간을 빼앗기고 어렵게 대학을 졸업해서는 구직 경쟁에 나서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감정부터 앞선다. 어린 학생의 꿈은 디자인 좋고 비싼 교복, 머리카락을 기를 수 있는 자유보다 더 중요하다. 최소한 부모 세대에게 물려받은 것 정도는 후대에게 남겨주고 싶은데 갈수록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 같다.

억압의 상징이었던 교복과 두발 규제는 사라지되 자신과 희망을 품고 꿈을 키울 수 있었던 여건이 그립다. 고려대 장하성 교수는 ‘한국의 젊은이들은 6.25 이후 최초로 부모 세대보다 못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지 않는가. 서울대 송호근 교수는 ‘미래 세대의 길을 터주기 위해 50~60대가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해당 세대로서 동의하고 기꺼이 내줄 의향도 있다. 아이들이 다시금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무엇을 못하랴. ‘응답하라, 1982!’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권홍우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