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로터리] 배고픈 사람, 배아픈 사람

내가 어렸을 때는 곶감이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 물론 우화(寓話)로 지극히 교훈적인 상징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이적에는 웃으면서도 그걸 믿었고, 맛을 볼 때마다 머리에 떠올리곤 했다. 차츰 나이들면서, 그리고 세월의 변화 속에서 허튼 것으로 바뀌어져갔고 우스갯소리로 받아들여졌다. 요즘은 거의 『웃기지 마!』하고 대번에 면박을 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통용되는 일도 있어 잘익은 구두선(口頭禪) 역할이어서 딴전을 부리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큰 병폐의 하나인 병역비리는 늘 이름 공개로 엄포나 장담만 해왔고, 사회적 부조리, 부정 따위는 책임추궁 운운하다가 곁가지 치기에 분주하다. 시행된 적이 없는 공포탄들을 믿을 사람이 없게 되고보니 일반국민의 인식은 곶감에 다름아니게 된다. 부유층과 권력층이 그 주도적 역할을 맡았으니, 제 자식만 고생하는 현실과 고달픈 사람살이가 달가울리 없다. 되도록 많은 세금의 포탈자, 몇 차례의 밀수업자, 그런저런 일들, 예를들 필요도 없이 신의와 신용은 깡그리 사라진 사회다. 신의와 신용은 믿음을 전제로 사람사는 도리를 일컫는 말이다. 추호도 의구심이 있어선 안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나라의 어디에도 그게 없다. 부도를 낸 사람은 여전히 은행돈을 잘 끌어다 쓰고, 믿음을 담보로 하는 정치인은 거짓말과 식언에 길이 나 있고, 배신을 떡먹듯 하는 판관은 오늘 내일의 논리가 각각이다. 그 결과는 모두를 「배가 아픈 사람」으로 살게 하고 늘 도둑맞는 기분인 「배가 고픈 사람」은 충실히 노력해서 부(富)를 축적한 사람까지 도둑인양 쳐다본다. 언제 그런 돈을 군인이 가졌으며, 무슨 수로 그런 큰 저택을 정치가가 지녔는지, 또 판검사는 얼마에 그 몸을 팔아 오늘에 이르렀는지, 한결같이 의아해할 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정치판으로 나서거나 괜찮은 자리로 나아가는 사람은 그 가슴에 단 「별」이 한둘 아니면 많을수록 훌륭한 사람이 되어 의사당으로 간다는 얘기를 예사롭게 듣게 하고 있다. 비아냥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불신풍조는 구석구석을 돌아 아이들도 이젠 「정말 진짜인데…」로부터 말문을 트기 시작한다. 정강정책을 찾아 정당인이 된 사람이 경선에서 지면 다른 정당으로 튀고, 우두머리는 정당명을 고치기 예사여서 백년대계는 없다. 이번 총선에도 공천이 또 무효라니, 차라리 신의와 신용을 잣대로 삼아 정당불신임을 부르짖는 일이 더 시급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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