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데스크 칼럼] 새 천년을 위한 「시애틀 전쟁」

지금 미국 서부 시애틀에서는 새 천년을 위한 논의가 불꽃을 튕기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제3차 각료회의가 지난달 30일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하지만 아직 뉴 라운드의 이름조차 정하지 못했으며 불행하게도 각종 비정부기구(NGO) 등의 격렬한 시위로 개막식조차 거행하지 못했고 시애틀 시내에는 비상사태까지 선포했다는 소식이다. 뉴 라운드를 지난 96년 유럽연합(EU) 무역장관 리언 브리튼의 제안대로 「밀레니엄 라운드」로 정하든, 회담 주최지를 따르던 전례를 감안해 「시애틀 라운드」로 정하든, 한국의 입장에서 연연해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수만명의 시위대들이 난투극을 벌여 경찰차에 불이 붙고 시위대가 피를 흘리는 사태로 진전, 「시애틀 전쟁(BATTLE IN SEATTLE)」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뉴 라운드가 새 천년을 위해 어떤 합의를 이룩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미국과 농산물 수출국 모임인 케언즈그룹이 농산물에도 공산품 수준의 무역자유화를 요구하고 나선 반면 인도 이집트 말레이시아 등 개도국들은 93년의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정마저 지켜지고 있지 않다며 강경 입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뉴 라운드의 새 이름이 어떻게 정해지든 농산물 개방 개도국과 선진국의 이해 조정 전자상거래 무관세의 적용 시기 등이 핫 이슈가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하여튼 환경론자들을 비롯한 각국의 NGO들이 벌인 시위는 별개로 하더라도 농산물 개방과 관련한 미국의 입장은 지나치게 쇼비니즘적이다. 우선 미국은 지난 9년 동안 유례없는 호황을 누려왔으나 토지를 주요 생산요소로 하는 농산물의 경우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수확체감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컴퓨터 등 전자산업이 수확체증의 법칙으로 미국 경제의 번영을 이끌어 온 점과 비교해 보면 상당히 대조적이다. 물론 미국은 농산물 대국으로 쌀값 등을 비교해 볼때 한국같은 개도국에 비해 5배나 비교우위에 서 있다. 하지만 농산물 교역의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미국이 농산물 개방에 집착하는 것은 곡물 메이저를 의식한 대선용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더욱이 93년 우루과이 라운드의 혜택은 적어도 농산물 분야에서는 미국보다 중국이 더 누렸다는 분석까지 있지 않은가. 또 국경없는 세계 교역이 바로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장애자에 대한 특별한 예우가 필요하듯 후발 개도국에 대한 선진국의 양해는 세계화의 전제조건이다. 하여튼 우리 입장에서는 앞으로 계속될 협상의 진행 과정을 면밀히 주시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의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93년까지 진행된 우루과이 라운드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될 것이다. 미국은 93년 12월 제네바에서 열리는 UR 마지막 협상에 앞서 11월 시애틀에서 아태경제협력체(APEC) 첫 정상회담을 열었고 그에 앞서 북미자유무협정(NAFTA)를 완결했다. 당시 국제경제 전문가들은 미국이 NAFTA를 시발로 APEC이라는 징검다리를 넘어 UR 마무리, 즉 WTO 구축이라는 수순을 밟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람보 미국의 고단위 무역전략이었던 셈이다. 반면 당시 한국의 태도는 막연하게 미국의 「처분」만 믿는다는 식의 소극적인 모습이었고 국내에서만 쌀개방을 놓고 비분강개했었다. 심지어는 청와대 고위관계자조차 소위 마크업이라는 부과금을 적용하면 개방이 두려울 것 없다는 태도를 보였었다. 그러나 93년말 제네바 협상이 끝난 뒤에도 우리의 경우 명확한 부과금이 결정되지 않아 국민에게 「굴욕 협상」으로 비춰지고 또다시 농수산부장관이 경질되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하기야 UR 협상이 막 시작되던 지난 91년에도 당시 盧泰愚대통령이 청와대 오찬에서 『UR는 걱정할 것 없다. 외국 쌀값이 싸면 일단 수입하되 관세를 많이 붙여 그 돈을 농촌에 쓰면 되지 않겠느냐』고 발언해 집권당인 민자당 경제대책위원들을 놀라게 했던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경제대책위원들은 『우루과이 라운드는 바로 그 관세를 없애는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라며 대통령의 시각을 교정해 주었지만 그 후로도 정부가 적극적인 대응책을 마련한 것 같지는 않았다. UR가 노태우 정권때 시작돼 김영삼(金泳三) 정권때 정치적 파국을 불러일으켰듯 뉴 라운드도 김대중(金大中) 정권에 시작돼 차기 정권부터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뉴 라운드 협상에서 우리 대표단이 실패한다면 차기 정권의 짐이 될 뿐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할 것이다. /IAKIA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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