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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온도 영하 20도의 시베리아 냉동추위가 뼛속 깊이 파고든 8일 경기도 안산의 반월공단. 작업복을 뚫고 들어갈 만큼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도 유서 깊은 반월공단의 공장 굴뚝들은 곳곳에서 쉼 없이 연기를 뿜고 있었다.
200평 남짓한 삼일엔지니어링 공장에 들어서자 공장 안은 기계를 돌리는 근로자들의 열기로 후끈했다. 건설 부품을 만드는 이 회사는 오는 4월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건설기계전시회인 '바우마(BAUMA) 2013'에 보낼 물품 납기일자를 지키느라 설 연휴마저 반납했다. 송인석 삼일엔지니어링 대표는 "우리 같은 중소기업들은 주5일 근무를 해서는 납기일을 맞출 수가 없다"며 "다행히도 시골에 가지 않는 직원들과 공장장이 출근해 밀려 있는 물량을 제때 맞춰 내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시화공단의 자동차 금형 제조업체인 대승기공도 바쁘기는 마찬가지. 연휴 직후 일본으로 보내야 할 스틸휠의 납기를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염진교 대승기공 대표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택했다. 짧은 연휴를 감안해 직원들에게 2~3일의 휴가를 더 준 것.
염 대표는 "젊은 기술직 직원을 채용하기 어려워 50~60대 직원들을 쓰고 있는데 어떻게 이들에게 연휴까지 반납하고 일해달라고 할 수 있느냐"며 "주변 기업 중에 직원들 봉급도 못 준다는 회사를 2곳이나 봤는데 우리는 사정이 좀 나아 설 상여금과 햄 선물세트 한꾸러미를 나눠줬다"고 빙그레 웃었다.
그는 지난해만 해도 25년간 이어온 사업을 접을까 고민했다. 돌파구를 찾은 것은 지난해 말. 가까스로 일본에 스틸휠 납품길을 뚫은 것이다. 염 대표는 "주변 기업들 대부분이 사상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고 나 역시 지난해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융자지원을 신청했다가 두 번이나 탈락되면서 사업을 접을 생각을 했다"며 "하지만 신일본제철에 납품하는 기업에서 우리에게 금형제품 생산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서 재기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회상했다.
현대ㆍ기아자동차 1차 협력사인 A기업도 엔화가치 상승세가 이어질 경우 경영 압박이 커질 수 있지만 직원들에게 설 상여금을 지급했다. 지난해보다는 적지만 상여금마저 마련해주지 못한 일부 업체들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이 업체의 한 임원은 "중소기업 직원들이 대기업 직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상여나 휴가 등은 최대한 챙겨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라며 "현대ㆍ기아차그룹은 전자어음을 발행해도 2~3일 내에 결제하는 관행을 이어오고 있어 우리 역시 협력사들에 바로바로 현금결제를 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희망가를 부르고 있는 일부 기업과 달리 반월ㆍ시화공단 전반의 체감경기는 추운 날씨만큼이나 얼어붙어 있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염 대표는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기대감이 살아날 만한데도 전자부품업체들 외에는 대부분 지난해보다 더 경영상황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손을 놓고 있는 공장들이 많으니 식당들은 (일감이 없어 잔업을 하지 않고 일찍 퇴근하는 관계로) 점심 장사에 그쳐 간판이 바뀌기 일쑤고 평일 4시 반이면 서울로 가는 모든 도로가 꽉 막혀 불황의 기운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