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경제수필] 실패한 재판

「환란사건」재판의 본질은 이른바 IMF라는 폭격을 불러들인 장본인이 누구이며 누구에게 유죄판결을 내려야 할 것이냐에 있지 않다. 이 재판의 본질은 한국이라는 나라와 그 사회가 미증유의 재난으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총체적 성숙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는 답을 찾는 데 있다. 당시의 대통령 YS와 피고석에 출두한 두 전직 경제책임자에 대한 도덕적인 법적 응징 혹은 무죄언도는 한낱 상징에 불과하다. 이런 측면에서 재판은 실패했다.왜 그렇게 되었는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세력의 정략적 수단이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해석도 있고 정책실패를 형사사건으로 만들어 간 법리의 오류, 혹은 국민정서를 법정으로 끌어들인 한국적 푸닥거리식 해법이 원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재판이 안되는 사건을 재판으로 만들었으니 결과가 그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재판은 꼭 있어야 했던 재판이다. 어떤 쪽 정치세력의 승리를 위해서 혹은 그 승리가 허구라는 반대 정치세력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수많은 실업자와 가난해 진 국민가계의 주범을 법의 이름으로 심판하고 처단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보는 것도 아니다. 혁명이나 정권교체로도 이루기 힘든 개혁과 국가성숙의 이벤트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장장 407일간 계속된 이 재판은 그동안 27차의 공판이 열렸으며 장차관을 포함, 역대 경제책임자 50명이 재판정에 증인으로 출두하였다고 한다. 그야말로「세기의 재판」이라 할 수 있다. 그 방대한 자료와 규모도 그렇지만 한 국가의 총체적 부실이 피고석에 앉아 있던 것이다.그리고 그 진실은 정치가· 행정가· 금융인· 사업가· 국민 대중에게 확대 전파됨으로써 하나의 시대정신을 만들어 냈어야 옳았다. 더욱이 재판이 진행되던 때는 국가경제위난 극복이라는 긴장의 시기와 일치했다. 이것을 새로운 생산양식과 에너지로 바꾸어 내지 못했으니 실패치고 대실패다. 누구의 책임인가. 언론이다. 이 세기적 재판을 사회화하고 대중화하는 데 언론은 실패했다. 그렇게 수없이 재판이 열렸는데도 이 본질을 꿰뚫고 재판의 진행을 추적 탐색하고 법정 논리와 정치적 이용까지 끊임없이 보도한 언론이 과연 있었던가. 시대는 역사변환의 단서와 기회를 제공했으나 언론은 매일 DJP와 YS 그리고 카지노형에만 매달려 있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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