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부처마다 경쟁하듯 분배정책 터뜨려

4·30 재보선용 선심정책 홍수<br>근로소득보전세 '장기과제'서 '최우선' 돌변<br>생계형 신불자대책, 한은 편법지원 시비까지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취임한 후 지난 23일 처음 열린 당정협의회. 정부 관료들은 이날 열린우리당 의원들로부터 한시간 이상 혼이 났다. 1가구 1주택에 대한 비과세 축소 등 표심(標心)과 직결되는 주요 세제정책들을 당의 ‘윤허’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는 게 이유였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정책은 이렇게 사장됐고 대신 당정협의라는 형식을 통해 수도권과 중산ㆍ저소득층을 겨냥한 설익은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신임 경제수장의 리더십이 선거를 앞둔 당의 위세에 눌려 벌써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보선을 한달여 앞두고 최근 나온 굵직한 정책들만 10개 안팎. 대부분 경제ㆍ사회를 뒤흔들 메가톤급 과제들로 일부는 5~10년의 중장기 안목이 필요한 항목들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정책들이 재정의 수급에 대한 명확한 검증작업도 없이 ‘인기영합식’으로 쏟아지고 있다는 데 있다. 1가구 1주택 비과세 축소방침이 보름 사이 철회된 데 이어 저소득층을 타깃으로 한 근로소득보전세제(EITC)는 별다른 설명도 없이 ‘장기추진 과제’에서 ‘최우선 추진과제’로 돌변했다. 당정은 이를 상반기 중 도입, 타당성조사를 마친 후 내년부터 본격 시행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2조~3조원대에 이르는 엄청난 재원을 확보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이 없다. 재경부의 한 당국자는 “시행 여부 검토에만 상당 시일이 소요되고 3~4년 내 시행이 힘들 텐데”라면서 혀를 찼다. 생계형 신용불량자대책은 무리한 정책발표로 제도시행 전부터 적지않은 후유증을 유발하고 있다. 정책의 골간이 ‘은행에 대한 팔꺾기’에서 출발하면서 신(新)관치 논란을 일으킨 데 이어 자산관리공사에 대한 한국은행의 자금지원을 놓고 편법시비까지 낳았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65세 이상 저소득층 노인에 대해 일괄적으로 경로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도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정책이 시행되면 20만8,000명이 신규지원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야권의 한 인사는 “객관적 선정기준이 선행되지 않으면 형평성 논란을 불러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눈치 빠른 공무원들은 부처간 조율 없이 ‘분배 지향적’ 정책들을 경쟁적으로 내놓는 양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생계형 신불자대책에 이어 보건복지부가 상반기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힌 극빈층 긴급지원제도, 산업자원부와 교육부 등이 주도적으로 진행 중인 영세자영업대책과 학자금대출제도 등 비슷한 성격의 대책들이 줄지어 발표될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신불자대책 중 자영업 부문은 추후 종합대책에 포함시켰어도 될 성질이었다”고 인정했다. 정책이 선거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당에서 일방통행식으로 발표되는 정책들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 논란을 일으킨 서울공항 이전검토 문제는 대표적 사례. 여당으로서는 행정도시 건설에 따른 수도권 공동화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공항이전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재보선의 승부처인 수도권 지역의 표심을 얻기 위해 섣불리 발표했다는 비판이 오히려 거세다. 교육부가 수도권발전특위와의 간담회에서 지방대학의 수도이전 허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대목도 수도권 민심 달래기의 연장선에 맞닿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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