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6.3사태 高大 구국투쟁위' 경찰 정보 공개

시위주도자 이명박·최장집·김덕규 포함…성북서 작성, 고대박물관 소장

1964년, 박정희 정부가 추진하던 한일국교정상화 회담이 굴욕적이라며 봉기한 이른바 '6ㆍ3 항쟁'을 주도한 '고려대 데모사건'에관한 경찰측 정보 자료가 공개됐다. 이 자료는 당시 고려대 담당인 서울 성북경찰서가 고려대 6ㆍ3 항쟁이 계엄령발포와 그에 의한 그 주모자들의 검거로 일단락돼 가던 시점인 1964년 6월17일 작성한 한 장짜리 대형 문건으로 당시 경찰측이 파악한 '고대 데모 사건 개요'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고려대박물관(관장 최광식)이 최근 입수해 전시를 시작한 이 문건은 한일국교정상 회담이 '저자세 외교'임을 들어 고려대 학생들이 봉기해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3월24일 이후 6월3일 국회의사당 앞 점거 시위에 이르는 기간에 전개한 운동을 일지로 정리하는 한편, 그것을 주도한 단체와 인물을 도표화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경찰은 문건 제목이기도 한 '고대 데모 사건 개요'를 3월24일 봉기와 국회의사당 점거 →5월25일 궐기대회→6월1일 데모 좌절→6월2일 데모→6월3일 국회의사당 앞 점거 시위라는 큰 흐름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시위를 주도한 단체로는 5월 31일 결성된 '구국투쟁위원회'(구국투위)를 지목한 경찰은 그 중심 인물로는 위원장 김재하(金載河. 당시 법대 재학)와 당시 고려대 단과대 학생회장들로서 부위원장들인 이경우(李炅祐.법대)ㆍ박정훈(朴正勳.정경대)ㆍ이명박(李明博.상대)을 들었다. 이 '구국투위' 조직표에서는 또 산하 부장들로는 최장집(崔章集.기획.정외과)ㆍ김덕규(金德圭.선전.정외과)ㆍ손옥백(孫玉白.응원단장)이 나타난다. 그러면서 '데모 주동 인물'로는 위원장인 김재하를 필두로 이경우ㆍ박정훈ㆍ손옥백ㆍ최장집ㆍ김덕규ㆍ김병길(金秉吉)ㆍ김광현(金光鉉.역도부)을 지목했다. 이와 같은 경찰측 자료는 당사자 증언이나 이에 관한 각종 연구와 상당히 부합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의하면 한일회담 반대 투쟁에서 시작한 당시 고려대 학생운동은 5월31일 밤, 더욱 강력한 투쟁을 위해 박정희 군사정부의 퇴진까지 요구하며 '구국투위'를 결성했으며, 이를 발판으로 6월3일 오후 1시40분경에는 고려대 학생 주도로 국회의사당을 점거하는 사태로 발전했다. 여기에는 고려대생 외에 서울의대, 성균관대, 동국대, 서울상대, 숭실대 등 18개 대학 1만5천여 명이 참가했으며, 일반시민까지 합치면 총 참여자는 3만 명 가량됐던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에 놀란 정부는 3일 오후 6시30분경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본격적인 데모 진압과 시위 주동자 검거에 들어갔다. 이에 의해 시위 과정에서 '구국투위' 집행부 중 손옥백이 검거돼 구속됐으며 계엄령 선포 이후인 6월15일에는 그동안 피신해 있던 위원장 이경우와 부위원장 이명박이 검거됐다. 이들을 포함한 고대생 13명은 서대문 형무소로 이첩되어 두 차례 걸친 재판 끝에 공소기각 조처로 대부분 석방되었으나 이경우와 이명박은 동국대생 김실, 한양대생 이정재, 건국대생 박원규와 함께 내란죄로 5년 구형에 3년 징역 집행유예 5년 등을선고받았다. 이 경찰측 자료에는 현재 한국사회 각 분야 지도급으로 활약 중인 국회부의장(김덕규)과 서울시장(이명박), 교수(최장집) 등이 당시 시위대 지휘부를 형성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데다, 경찰이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고려대 박물관 김상덕 연구원이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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