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조서를 던져버려라’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 파문 이후 검찰의 증거 분리 제출이 확대되는 등 법조계가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공판중심주의 실현을 위해선 인적ㆍ물적 기반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다. 공판중심주의란 형사재판에서 판사가 공개 법정 밖의 검찰 조서 기록이나 의견서, 검사 및 변호인과의 만남에서 피고인의 유ㆍ무죄 심증을 형성하지 않고 오로지 법정에서의 구두 진술과 증거(검찰 조서 포함)에 의해서만 실체적 진실을 가리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하루에만 20~30건의 재판을 진행해야 하는 판사 입장에서 검찰 조서 등 서류에 의존하지 않고 법정 공방으로 유ㆍ무죄를 가려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말로는 법정 공판중심주의 재판을 외치지만 재판 시작 전이나, 재판 기일 사이, 또는 재판 선고일 전 등 법정 밖에서 검찰 조서 등을 통해 실질적으로 유ㆍ무죄를 가리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 같은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형사소송법을 전면 개정해 공개 재판 건수를 대폭 줄이는 동시에 판사 수를 대폭 늘리고 한명의 판사가 한 개의 법정을 독점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울중앙지법의 경우 법정이 충분치 않아 현재 판사 한명이 일주일에 이틀만 법정을 쓸 수 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명실상부한 공판중심주의가 실현되려면 재판 당일 또는 매일 연속해 심리를 열어 즉시 선고하는 집중심리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도 강간 뇌물 폭력 사기 등 형사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기 마련이어서 일단 재판이 시작되면 공개적이고 연속적으로 재판을 열어 당사자와 증인의 ‘따끈 따끈한’ 진술과 증거, 인상 등으로 유ㆍ무죄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이나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공판중심주의에 입각해 형사재판은 한번 공판이 열리면 추후 기일을 정하지 않고 심리를 끝내고 바로 선고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국내 공판은 판사와 법정 수 부족으로 2~3주마다 재판을 열다 보니 한 사건이 통상 수개월 지속되는 것은 기본이고 어떤 것은 2년이 넘어가고 이 과정에서 담당 판사가 바뀌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광주지검 이완규 부부장 검사는 “판사는 재판이 수개월간 길어지면 법정 진술이나 증거 보다는 각종 기록에 의존하게 될 수 밖에 없고 재판과 재판 사이, 선고일을 앞두고 법정 밖의 의견서, 변호사와의 만남 등을 통해 유ㆍ무죄 심증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검찰 조서의 증거 능력 여부 논쟁, 증거분리 제출 확대 시행 등으로 법원과 검찰이 사법개혁 주도권 싸움을 벌일 게 아니라 진정한 공판중심주의 실현을 위한 인프라 확충과 제도적 기반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