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슈 인사이드] 민자 SOC 사업은 돈먹는 하마

고속도로·항만 등 12년간 쏟아 부은 혈세만 2조8000억<br>인구 증가율 등 변수 많지만 엉터리 수요예측 다반사… 보장금 더 받으려 부풀리기도<br>과다한 재정지출 막으려면 민간사업자 자금재조달 독려해야

지난 2000년 개통한 인천공항고속도로를 차량들이 띄엄띄엄 달리고 있다. 인천공항도로의 지난해 교통량은 수요 예측 대비 54% 수준에 불과했으며 그 동안 정부가 지급한 보전금은 1조원이 넘는다. /서울경제DB


지난 2011년 12월 서울 우면산터널은 통행료를 2,000원에서 2,500원으로 올렸다. 통행량이 당초 예상 교통량에 못 미치면서 늘어난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였다. 우면산터널측은 요금 인상을 통해 적자 폭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당초 예상과 정반대로 나타났다. 서울시가 지난해 민간 사업자에 보전해줘야 할 돈은 28억원에서 55억원으로 오히려 2배 가까이 늘었다. 원인은 통행료 인상 이후 우면산터널의 통행량이 10% 가량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통행량이 줄어든 것은 2004년 개통 이후 처음이다.


서울시와 터널 측의 협약에 따라 서울시는 교통량이 당초 예측량의 79%에 못 미치면 부족분을 보전해 줘야 한다. 결국 엉터리 수요 예측으로 막대한 국민 혈세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투입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우면산터널은 민자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12년간 민자 SOC사업에 쏟아 부은 혈세 3조=인천공항고속도로가 개통한 지난 2000년 이후 정부나 각 지자체가 고속도로와 항만, 철도 등 민자 SOC사업에 쏟아 부은 손실 보조금은 2조8,646억원에 이른다.

정부 운영 민자도로와 지자체 민자도로에만 각각 1조9,250억원, 2,226억원이 들어갔다. 2007년 이후 인천공항철도와 서울지하철 9호선 등 철도 분야에도 6,712억 원이 최소운영수입보장금(MRG) 명목으로 날아갔다. 2004년부터 5개 민자 항만에는 458억원이 투입됐다.

이처럼 막대한 혈세 보전되고 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민자 사업자들은 경영개선을 명분으로 통행료를 잇따라 인상하고 있다. 지난달 27일에는 용인~서울고속도로를 제외한 8개 민자도로의 통행료가 1년 1개월 만에 100~400원씩 올라가기도 했다. 대구~부산고속도로 구간은 처음으로 1만원을 넘었으며 인천공항도로 통행료도 7,700원에서 8,000원으로 올랐다.

국회 국토해양위 소속의 문병호 민주통합당 의원은 "안 그래도 서민의 삶이 어려운데 대선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민자도로의 통행료를 인상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근본 원인은 엉터리 수요 예측=도로ㆍ철도ㆍ항만 등 민자 SOC사업으로 인한 막대한 혈세 보전의 근본 원흉은 과다 수요 예측이다. 지난해 인천공항고속도로의 예측 교통량 대비 실제 교통량은 54.01%에 불과했으며 부산~울산고속도로와 대구~부산 고속도로는 각각 48.85%, 55.23% 밖에 안 됐다.

정부고시 사업의 경우 한국교통연구원 등이 수요 예측을 시행하지만 민간고시 사업은 민간에서 직접 수요예측 보고서를 작성한다. 정부고시든 민간고시든 정부의 최종 검토를 거쳐서 계약이 체결됨에도 번번이 수요 예측이 엇나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민자사업자들은 한국처럼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세종시ㆍ혁신도시 등 정부 정책에 따른 도시 계획이 수시로 수립되는 상황에서 정확한 교통 예측은 무리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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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사업 투자회사인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의 한 관계자는 "인구 증가율과 도시계획, 대체 교통 수단 등장 등 변수가 너무 많다"며 "일례로 평창올림픽을 위해 몇 년 뒤에 KTX가 건설되면 서울~춘천고속도로는 엄청난 경쟁자를 만나게 되는 것인데 이런 변수는 예측 불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MRG를 더 많이 받거나 건설 타당성 확보를 위해 민간 사업자들이 수요 예측을 과도하게 부풀려 왔다는 비판은 면하기 힘들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엄청난 양의 세금이 버려지고 있음에도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수요예측에 실패해도 책임을 지게 하거나 제재를 가할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편익 분명히 존재… 자금 재조달 독려해야=이 같은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민자 사업을 용도 폐기할 수 없는 이유는 사회적 편익 측면에서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민간 부문의 투자를 통해 적은 재정 투입으로 SOC 조기 확충 효과를 거둠으로써 재정 절감률이 13~16% 가량 된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채 비율도 1~2.5%포인트 줄이는 효과가 있다.

박상우 한국교통연구원 박사는 "2009년 개통한 서울~춘천고속도로의 경우 민자가 투입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도 공사 중일 것"이라며 "통행료를 감안하더라도 국도를 이용할 때보다 시간이 크게 단축된다는 점은 국민 입장에서 편익이 크게 늘어나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과다한 재정지출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는 민간사업자의 자금 재조달을 독려해 MRG조건 재조정과 함께 수익률 보장 기준을 현재의 국고채 금리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자금 재조달은 고금리로 조달한 자금을 저금리로 바꿔 확보한 이익을 민간사업자와 정부가 나눠 갖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인천공항, 천안-논산, 대구-부산 3곳은 자금 재조달 등을 통해 MRG 보장수준과 기간을 낮추는 성과를 거뒀다. 대구시의 범안로처럼 시가 기존 대출금을 보증해 상환한 후 새 저리자금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구성해 최소한의 비용만 보전하는 방식으로 전환한 사례도 있다.

박흥수 위원은 "자금 재조달 방식과 함께 시장 경제의 공정 거래 원칙을 준수한다는 관점에서 적정 이윤을 넘어서는 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식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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