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양극화와 노블레스 오블리주

최근 양극화 문제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전문잡지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80년대 이후 선진국을 중심으로 가속화된 규제 완화와 세계화의 흐름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부문간 격차와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시장 질서가 날로 힘을 더하는 오늘날의 경제 환경하에서 자유화와 세계화의 흐름을 활용해 경제적 파이를 최대한 키우되 성장에서 소외된 약자층과 빈곤층에 대한 배려도 뒤따라야 한다.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눠가지는 사회시스템이 작동될 때 건강한 사회, 지속가능한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의 심각성은 상위 20%의 고소득층과 하위 20%의 저소득층간의 소득 격차가 5.43배로 높아지고 자산 격차는 거의 20배에 이른다는 최근 통계가 말해주고 있다. 더구나 최근의 고위공직자 재산등록 현황을 두고 볼 때 이제는 우리 사회의 지도층과 지도적 기업들도 양극화 해소에 관심을 가지고 결연히 나설 때가 아닌가 한다. 높은 사회적 신분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를 강조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들의 지성이 그리스인에 뒤지고 체력은 게르만인, 경제력은 카르타고인보다 못하지만 로마 제국이 천년 동안 번영을 누린 이유로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꼽았다. 귀족층의 솔선수범과 희생에 힘입어 로마는 고대 세계의 맹주로 자리할 수 있었으나 제정 이후 권력이 개인에게 집중되고 도덕적해이가 만연하면서 급속히 쇠락의 길로 들어선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우리 역사에도 안으로는 근검을, 밖으로는 적선을 강조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이 많이 있었다. 12대 300년간 만석꾼 살림을 지켜온 경주 최부잣집의 전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이다. 50년에 전재산을 영남대 전신인 대구대학에 기증함으로써 최씨 가문의 실체는 비록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졌지만 그 고귀한 정신은 아직도 남아 있다. 오랜 세월 만석꾼의 자리를 지킨 비결은 최부잣집의 가훈에서 엿볼 수 있다. 절대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 재산은 1년에 만석 이상을 모으지 말라.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사들이지 말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특히 흉년에는 양식을 풀어라 등등. 이웃을 배려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나눔의 철학이 그 비결이었던 것이다. 경주 최부잣집 고택 복원이 경주시에 의해 추진 중이다. 가진 자의 도리와 분수를 지키며 살았던 최부잣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정신을 되새기는 장소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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