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발언대] 정치의 요체는 인사에 있다


당나라 현종 때 한휴라는 사람이 재상이 됐다. 그런데 이 한휴는 매우 곧은 성격의 인물이었다. 현종은 가끔 지나친 쾌락을 즐길 때면 스스로 마음이 찔려 좌우를 돌아보면서 "지금 이 사실을 한휴가 아느냐, 모르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언제나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곧바로 한휴의 상소가 들어오는 것이었다.

어느 날인가는 많은 신하들이 "한휴가 재상이 되고 난 뒤 폐하께서는 옥체가 쇠약해지셨습니다."라면서 한휴를 비방했다. 그러나 현종은 "비록 짐은 쇠약해졌지만, 천하는 한휴 때문에 살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현종은 초심을 잊어버리고 강직한 신하를 멀리하고 아첨을 일삼는 간신배들을 가까이 두면서 안녹산의 난 등 많은 내부의 저항에 부닥쳐야 했다.

참으로 인사는 만사다.


공자가 노나라 애공을 만났을 때 애공은 정치의 도리를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는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신하를 뽑는 데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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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초로 통일국가 창업에 성공한 진시황은 통일 후 오직 1인 천하를 생각했고 인재를 기용하기는커녕 그저 자신에게 철저히 복종만 하는 노예적 신하, 즉 '노재(奴才)'를 옆에 뒀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반드시 유능한 사람들을 모함하고 해쳐서 결국 기껏해야 주변 잡사를 처리하는 집사형의 사람들만 남게 된다.

이렇게 올바른 길을 간언하고 위험을 직언하는 사람들이 없어지면서 진나라는 통일된 지 불과 15년 만에 망하고 말았다.

자고로 인사란 비난을 받기 쉬운 문제이다. 새 정부 역시 줄곧 인사 문제로 시끄러웠다.

이른바 공을 세운 '공신'의 과도한 기용은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지만,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 특히 주위에 예스맨만 있어서는 안 된다. 세종은 자기에 충성을 다하는 친위 그룹이나 명문대가 출신의 인물을 기용한 대부분의 역대 제왕들과 달리, 이른바 '유재시거(惟才是擧)', 즉 재능이 있는 사람을 기용한다는 인사원칙을 지켰다.

그리하여 전문성을 지니고 있으며 자기 분야에 열정적인 박연, 신숙주 그리고 정인지 등이 중용됐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세종대의 성세가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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