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8일 밤 멕시코 수도인 멕시코시티에서는 4,000여명의 학생과 시민단체 등 시위대가 "페냐 니에토는 물러나라" "국가는 죽었다"는 구호를 외치며 시내 대로를 점령하고 중앙광장인 소칼로까지 거리행진을 벌였다. 급기야 이들은 대통령궁 정문에 돌을 던지고 불을 질러 경찰과 충돌했다.
시위대는 9월 말 실종된 멕시코의 교육대 학생 43명이 경찰과 갱단의 공모 범행으로 피살됐다는 8일 연방검찰의 발표 직후 페냐 니에토 대통령이 예정대로 고속철 등의 사업 논의를 위해 해외 순방길에 나선 데 대해 더 격분하고 있다. 대통령이 경제에만 관심을 보이면서 가장 큰 사회 문제인 갱단 범죄 해결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중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호주에서 개최되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1주일간의 일정으로 9일 출국했다. 특히 멕시코 연방검찰총장이 대학생 실종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야 메 칸세(Ya me canse·'피곤하다, 그만하자'는 뜻)"라고 말한 게 시위대의 분노에 불을 질렀다. 지난달에도 멕시코시티에서만 5만명 정도가 참석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더구나 9일 현지 유력 언론이 페냐 니에토 대통령의 700만달러에 달하는 초호화 사저를 말썽 많은 고속철 건설 컨소시엄에 참가한 기업이 건설했다고 폭로하면서 부패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3일 멕시코 정부는 공사비가 37억달러인 고속철 사업자에 단독 입찰한 중국 주도의 컨소시엄을 선정했다가 서둘러 낙찰 결정이 나온 데 대한 비난 여론이 쏟아지자 나흘 만에 이를 철회했다. 하지만 이 컨소시엄에 대통령 사저를 지은 회사도 참여했다는 사실이 새로 알려지면서 특혜 로비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국 혼란이 장기화하면서 페냐 니에토 대통령의 경제개혁 드라이브에도 제동이 걸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외국인 투자가들이 학생 살해 사건을 계기로 멕시코의 고질적 치안불안에 주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미국 경제 전문지인 포브스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서 페냐 니에토 대통령을 지난해 37위에서 올해 60위로 강등했다.
포브스는 "페냐 니에토 정부가 에너지·조세·이동통신 등 경제개혁 작업을 가속화하고 있지만 폭력 범죄가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 6월 페냐 니에토 대통령이 '멕시코를 구하는 중'이라는 제목으로 미국 시사 주간지인 '타임' 표지를 장식했던 것을 감안하면 외국인 투자 열기도 순식간에 얼어붙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