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프랭크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의 급서로 당시 부통령이었던 해리 S. 트루만(Harry S. Truman:1945-53)이 대통령직을 승계할 때만 해도 그의 대통령으로서의 역량에 대해 확신하는 국민들은 거의 없었다. 거목 루즈벨트에 가려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투르만은 외모뿐 아니라 학벌도 내세울 만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목소리까지 가늘고 날카로워 라디오를 통해 전달되는 소리는 전혀 편안한 느낌을 주지 못했다. 그 때문에 루즈벨트가 국민과 연결고리로 생명 줄처럼 활용하던 라디오도 투르만에게는 별 소용이 없었다. 이렇듯 국민들에게 별 호감을 주지 못했던 트루만에게 첫해 국정운영은 끔찍한 사태의 연속이었다. 전시에 엄격하게 통제되던 물가와 임금은 폭발적으로 급 상승했다. 또 사회적 기강과 규제가 풀리면서 “미국 역사상 가장 지루하고도 가장 값비싸게 진행된 노사분규”에 시달리게 됐다. 우선 탄광, 제철, 자동차 산업이 파업으로 제 구실을 하지 못 했다. 1946년에는 소 사육 농장들이 가격 인상을 요구하면서 출하를 거부해 육류 품귀 현상까지 빗어졌다. 가장 어려웠던 파업은 그 해 5월에 단행된 철도 파업, 미국 전역이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다. 수송을 기다리던 곡물과 농작물은 출하 대기장에서 썩고 있었다. 급기야 용단을 내린 대통령은 파업 중인 철도 노동자들을 군에 징집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고 의회에 요청했고, 파업은 종결 됐다. 투르만을 유능한 대통령으로 인식시킨 성공적 강경책이었다. 난세의 상황이 오히려 그에겐 득이 된 셈이었다.화물 연대의 불법 운송 거부에 “물류같은 국가 중요기능을 붙잡고 집단 이익을 관철하려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취한 강경 조치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통계청 자료에 보며는 우리 나라 자동차 생산량이 중국에 추월 당해 5위에서 6위로 밀려났다. “노사 분규로 비롯된 자동차 산업의 생산성 저하`가 원인이다. 한국은 무역 의존도가 66%로 경제협력기구(OECD)국가중 7번째로 높은 나라다. 수출이 없으면 죽는다. `해가 지지 않는 국가`영국이 노사분규와 파업으로 인해 3류 국가로 전락한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영국만한 자원도 없다. 축적된 부가 없는 현실에서 부의 균등분배를 주장하는 것은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억지 논리일 뿐이다. 문제는 사회적 합의라는 경험이 미천한 상태에서 자기 주장과 감정을 앞세운 충돌은 점차 계층간 대립으로 치닫고 아무에게도 이익이 없는 상처만 남긴다. 어려운 때 일 수록 국민들이 힘을 합해 나라에 기여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부의 균등 분배`란 법과 질서를 지킬 때만이 이루어 질 수 있는 공정한 진리다. 투쟁으로서가 아니라 진정한 참여의 눈으로 국민적 가치를 찾을 때 공정과 자유는 찾아오게 돼있다.
<김도림(아메리칸 칼리지 학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