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자유치 빛과그늘] 5. 기업경영에 미친 영향
주주중심 경영 정착속 국내산업 잠식 우려
"미국의 경우 매출액과 순이익 등 기업경영과 관련된 각종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잘못 공시하면 엄격한 처벌을 받는데 이것이 경영자를 회사사정에 정통하도록 만든다. 한국은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
최근 한 행사에서 제프리 존스 주한미상공회의소 회장이 주제발표에서 한 말이다.
그의 말은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해 빚어지는 문제가 많다는 점과 외국 기업들의 투자가 급증하면서 이것이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 상황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최근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미국ㆍ유럽ㆍ싱가포르 등지를 잇따라 찾고 있다. 해외투자자들에게 기업설명을 하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서 CEO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말이 있다. "주주가치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수십년간 해결하지 못한 주주중심의 경영이 IMF를 계기로 몇년만에 해결됐다는 기업들의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지난 98년부터 3년간 순유입된 외국인 투자자금은 620억달러다.
국내 기업에 미치는 외국자본의 영향력은 날로 거세지고 있다. 외국자본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요구'하고 '우물안 개구리' 격에 머물던 기업 운영은 근본적인 변화를 맞고 있다.
박상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과거 외자 도입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였다면 이제는 구조조정과 신규사업에 있어 외자유치에 따른 이해득실을 면밀히 따져야한다" 면서 "재무ㆍ리스크관리 등 선진기법을 익히고 기술을 얻는 계기로 삼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외자 도입이 기업경영에 미친 빛
외자기업은 국내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건실한 외자 기업은 무역수지에 도움을 주고 기술이전ㆍ고용확대ㆍ국내 산업구조의 고도화에 기여한다.
또 국내 기업과 경쟁을 촉발시켜 국내 기업들이 선진 경영기법을 받아들이거나 기업투명성을 강화하도록 자극한다.
98년 한화와 효성그룹의 계열사 지분을 완전히 사들여 통합한 한국바스프는 매출 1조3,000억여원 가운데 45%가 수출이다. 일본 소니사는 한국 소니전자를 세우며 4,475명의 신규고용을 창출했다.
볼보건설기계코리아는 삼성중공업의 중장비사업부문을 인수, 1년 만에 적자에서 벗어났고 2년 만에 '2억달러 수출탑'을 수상했다.
특히 재무건전성과 현금흐름을 중시하는 경영이 국내 기업들에게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들은 너나할 것 없이 현금확보를 최우선의 재무관리 목표로 삼고 있으며 주요 자금원인 주식시장을 의식해 투명ㆍ선진 경영을 앞다투어 모토로 내세우고 있다. 결국 금융기관들까지 이전의 정부 경제정책, 거래 관계에 따른 기업 여신관행에서 벗어나 기업 신용도에 ?춰 여신을 재조정함에 따라 시장다운 시장기능을 최초로 형성해 가고 있다.
◇외자도입의 그림자
국내 시장을 노린 외자 기업의 경우 문제가 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헐값에 나온 기업매물을 사들이며 손쉽게 국내 시장에 손을 내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언오 삼성경제연구소 이사는 "국내 산업의 절반 이상이 대기업의 독과점구조로 돼 있어 외국 기업이 국내 대기업을 인수하면 한국시장을 손쉽게 장악할 수 있다"며 "외자 기업이 한번 시장지배력을 구축하면 국내 기업이 이를 극복하기가 대단히 힘들다"고 지적했다.
외자유치를 유인하기 위해 새로 도입된 제도들에서 생기는 갈등도 적지 않다. 세계적인 헤지펀드인 타이거펀드는 99년 9월 시민단체와 연대하여 SK텔레콤의 유상증자 계획반대를 주장하다 9.5%의 지분을 SK계열사에 매각, 막대한 차익을 얻은 바 있다.각 대기업들이 급조해서 구성한 사외이사진도 문제가 되고 있다.
기업 경험을 보유한 사외이사 인력 풀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 책임시비를 우려해 합병ㆍ 매각ㆍ신규사업 진출 등 주요 사안에서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당초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기업들이 외자와 시만단체 연대를 우려해 대표이사와 임원 선임을 연초에서 2~3월 주총으로 연기하면서 경영공백이 발생하는 신풍토까지 생겨나고 있다.
최인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