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만난 금융지주회사 회장의 경기 진단은 무서웠다. 그는 내년 유럽, 특히 스페인이 결국 고꾸라지고 그 상처가 독일에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유럽은 물론이고 미국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며 우리의 새 대통령은 정말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맞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에 증권사와 보험사 몇 곳이 도산할 것이라는 진단에 들어가서는 두려움마저 느끼게 했다.
그의 진단에 섬뜩함을 더 느끼는 것은 눈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대선은 위기이자, 기회 요인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렸지만 새 정권이 갖는 '통치의 힘'을 토대로 위기를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극복해낼 수 있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세계 어느 나라보다 멋지게 극복한 것도 새 정권이 출범한지 얼마 안 됐기 때문일지 모른다. 새 대통령이 강력한 힘을 갖고 경기 대책을 쏟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이런 기대감보다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이유는 너무나 많다. 현 정권의 가장 큰 실책인 '인사'문제가 한껏 고름으로 만들어져 있는 형국에 새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고름 덩어리가 한꺼번에 터질 수밖에 없는 탓이다.
내년 글로벌 경제위기 가시밭길 우려
그것은 누가 대통령이 돼도 마찬가지다. 참여정부 당시 대통령이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자리가 1만5,000개였다. 하지만 현 정권에 와서는 2만5,000개로 늘었다. 그만큼 현 정권이 인사에 너무나 많은 간섭을 했고 '농단'을 했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실책은 '인사 정책'이었다.
이는 거꾸로 새 정권이 들어설 경우 이전 정권이 심어 놓은 사람들이 모조리 물갈이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자리 나눠먹기가 이뤄질 것이며 개국공신들의 아귀다툼이 벌어질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5년 전에도 선거가 끝나자마자 대통령의 형과 개국공신들 간의 권력 분쟁이 극심하게 벌어지지 않았던가.
하물며 10년 넘게 기다려온 지금의 후보들이 대통령에 오를 경우 어떤 모습이 벌어질지는 생각하기 어렵지 않다. 더욱이 야권이 말하는 공동정권을 현실화할 경우 권력의 분화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은 상상하기 힘든 수준일 것이다. '공동 정권'이라는 말이 단어로는 멋질지 몰라도 현실에 들어가면 비극적인 마찰의 씨앗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대선 후보들이 쏟아내는 포퓰리즘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젖과 꿀'도 경기가 좋을 때 나눠줄 수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고꾸라지는 상황에서는 금새 바닥을 낼 것이고 새 대통령은 종국에 꿀 대신 "고통을 감내하자"며 구조조정의 냉기를 쏟아낼 것이 뻔하다.
공약 잊고 새 성장그릇 만들어야
이런 미래가 뻔한대도 새 대통령이 집권 초기 경제 민주화라는 담론에 허우적댈 텐데, 그 사이 우리 경제가 어디까지 내려앉을 것인지 참으로 안타깝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0년 전 참여정부 초기 경기가 가라앉는 동안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개혁의 칼날을 휘둘렀고 6개월이나 흐른 시점에야 경기를 띄우겠다고 나섰다. 그 사이 우리 국민이 민생에서 겪은 고통은 얼마나 컸던가. 지금의 모습이라면 새 대통령도 같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새 대통령이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선거가 끝나자마자 '공약'을 송두리째 잊어버리는 것이다. 공약은 선거 때의 약속일 뿐이다. 지금의 상황은 선거 때의 약속을 지킬 만큼 한가롭지 못하다. 사회적 총론을 모두 모아 성장의 그릇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먼 미래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