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17은 다목적의 팻감이다. 중앙쪽 흑대마를 보강하면서 우하귀 백진에 대한 침투를 엿보고 있다. 백18로 받은 것은 정수. 17의 아래에 그냥 잇는 것은 하변쪽에 여러 개의 팻감이 생긴다. 흑이 23을 두기 전에 검토실의 박정환은 선배들과 함께 가상도 하나를 만들어놓고 있었다. 참고도1의 흑1 이하 15(6과 12는 3의 아래. 9와 15는 3의 자리)가 그것이었다. 이 코스대로라면 패는 흑이 이긴다. 흑에게는 아직도 A와 B에 팻감 2개가 있기 때문이다. 패만 흑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바둑 자체도 흑이 이길 확률이 높다. “그래서 백이 타협책으로 나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원성진) 원성진이 만든 가상도는 참고도2였다. 참고도1의 백2로 받지 않고 참고도2의 백1로 물러선다는 얘기. 흑대마를 살려주고 좌하귀의 백을 모조리 희생시키는 대신에 좌변의 패를 백이 이기고 백23으로 선제공격하면(5,11,17…2의 아래. 8,14…2. 20…18의 위) 형세는 미세한 대로 백이 약간 앞선다. 이 코스가 쌍방 최선이었다. 그런데 이창호는 이 코스를 읽지 못하고 흑23이라는 어이없는 팻감을 쓰고 말았다. “부분적으로 손해가 분명한 팻감입니다. 좌변의 패를 그야말로 결사적으로 이기겠다는 의도지만 이런 식으로 두다가는 패를 흑이 이겨도 바둑은 지게 될 공산이 커요. 흑이 무너질 것 같은데요.” 원성진이 하는 말이었다.(21…20의 왼쪽. 22…19의 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