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 최대과제중 하나였던 재벌개혁, 이중에서도 하드웨어부분의 뼈대였던 4대그룹의 재무약정 이행이 일단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재벌개혁의 1단계가 종료된 셈이다. 문제점도 적지않다. 대부분 그룹이 불요불급한 자산매각보다는 유상증자를 통해 부채비율을 감축한 것이 대표적 예다. 심하게 표현하면 「허상의 부채감축」. 현대그룹의 경우 총 18조2,500억원의 자구부분중 유상증자에서만 13조9,000억원을 조달했다.◇그룹별 이행실적= 부채비율의 경우 4대그룹은 증자·자산매각 등으로 37조7,000억원을 조달, 정부 가이드라인(200% 이하)를 충족했다. 관심을 끌었던 계열주 이사선임, 사외이사 선임, 사외감사 선임 등의 기업지배구조개선 실적도 표피적으로나마 약정을 이행했다. 금감위는 4대 그룹이 재무약정을 모두 이행함에 따라 추가 약정을 요구하지 않되, 재무구조가 악화될 경우 주채권은행이 자율적으로 재무약정 체결 여부를 결정토록 할 방침.
▲현대= 가장 초점이 됐던 계열. 지난 98년말 부채비율이 4대계열중 가장 높아(449.3%) 200%이내 감축달성이 의문시됐었다. 작년말 부채비율은 181%(자산재평가포함때 152.1%)로 98년대비 268.3%포인트가 낮아졌다. 목표치(199.1%)를 초과달성했다. 4대그룹중 최대 감소폭. 주식시장의 활황에 따른 유상증자로 예상외로 쉽사리 목표를 달성했다. 계열사정리·금융자산 매각·부동산, 기계설비 매각 등 4조3,500억원의 자산을 매각했다. 국내·외 증자 13조9,000억원, 외자유치 26억7,000만달러 등의 실적을 보였다.
▲삼성 = 이행실적의 별변수가 되지 않았다. 지난해 상반기 이미 부채비율 200%를 달성했기 때문. 작년말현재 부채비율이 166.3%(자산재평가포함시 147.8%)를 기록, 98년말 275.9%보다 109.6%포인트 하락했다. 전자·금융·무역/서비스 등 핵심사업군 중심으로 98년말 현재 62개 계열사를 99년말까지 40개로 감축했다. 지분정리를 통해 중앙일보를 비롯한 9개사를 계열에서 분리하고 포항강재공업 등 비관련계열사 매각과 삼성전자의 전력용반도체 사업 등도 매각. 3조2,700억원어치의 자산을 매각해 목표치대비 이행률이 137.3%에 달했다. 4조1,200억원의 증자와 17억5,000만달러의 외자유치를 달성했다. 자구노력 이행규모는 총 7조4,000억원으로 목표대비 이행률이 140.9%에 달했다.
▲LG= 반도체지분 매각 등 8조5,000억원의 자구노력을 단행해 10조1,000억원의 부채를 감축, 부채감축 규모가 4대그룹 중 가장 컸다. 작년말 부채비율은 184.2%(자산재평가포함시 153.3%)로 98년말 341%에 비해 156.8%포인트 낮아지면서 당초 목표 199.8%를 달성해냈다. 2조3,600억원어치의 계열사를 정리하고 1조1,400억원규모의 금융자산을 처분하는 등 총 6조800억원 규모의 자산을 매각했으며 1조4,600억원의 국내증자 등 2조4,300억원어치의 자본을 확충했다. 외자유치규모는 27억8,000만달러에 달했다.
▲SK = 작년말 현재 부채비율이 161%로 98년말(354.9%)보다 193.9%포인트 낮아지면서 4대그룹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해동안 부채는 2,000억원 감소하는 데 그쳤지만 SK텔레콤 주가가 급등, 유가증권 평가익이 3조원에 달했다. 자산매각 1조2,900억원, 자본확충 2조2,700억원, 외자유치 12억4,000만달러 등 3조6,000억원어치의 자구노력을 단행해 목표치대비 103.2%의 이행률.
◇2차 재벌개혁 시작된다= 정부와 채권단은 4대그룹 구조조정에 대해 일단은 낙관적으로 보는 듯하다. 은행권의 총액여신 한도제 도입으로 재벌들이 무차별적으로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쓰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재벌 금융계열사에 대한 연계검사 강화로 계열 금융기관을 「사금고」로 이용하는 행태도 상당부분 사라질 것으로 본다. 물론 일부에서는 4대그룹의 부채비율이 오히려 높아질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주식시장이 정체상태에 빠지고, 경기호전으로 신규투자가 살아날 경우 부채증가는 불가피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같은 우려에도 불구, 정부는 앞으로 재벌의 2차개혁에 초점을 맞출 방침이다. 재무약정이 하드웨어적 기틀이었다면, 앞으로는 사외이사와 감사위원회 설치 등 지배구조 개선에 중심을 둔 소프트웨어 부분에 전력을 기울이겠다는 심산이다. 다행히 시기는 현대사태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앞당겨졌다. 재경부 등 정부부처에서 이미 재벌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한 개선방향을 마련중이다. 총선후 본격진행될 2차 금융·기업구조조정에서 정부의 정책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영기기자YGKIM@SED.CO.KR
입력시간 2000/04/12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