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가 공식 개막한 지난 7일(현지시간) 베니스에서는 100년 전통의 비엔날레 못지않게 관심을 끄는 전시의 막이 함께 올랐다. 세계 1위의 미술품 경매회사인 크리스티를 운영하며 명품브랜드 입생로랑, 구찌, 발렌시아가 등이 포함된 PPR 그룹을 이끄는 장 프랑수아 피노 회장이 산마르코 광장 건너편 해안에 새 미술관을 세우고 개관전을 연 것이다.
그가 설립한 도가나(Dogana)미술관과 팔라초 그라시(Palazzo Grassi) 두 곳에서 현대미술 수백여점이 전시돼 베니스를 방문 중인 미술계 인사들은 ‘비엔날레 보러 왔더라도 꼭 가봐야 할 전시장은 도가나’라고 말할 정도다.
15세기 메디치 가문의 정신을 이어받아 베니스의 약점까지 명소로 만드는 문화 운영 능력은 600년 수도 서울, 천년고도 경주를 가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베니스시(市)는 다 쓰러져가는 건물도 문화유산이라면 허물지 못하게 한다.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 일부 개조만 허가한다. 이번에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도가나는 15세기에 세관으로 쓰이던 오래된 건물로, 외형은 그대로 둔 채 내부만 고친 것.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내부 개조를 맡아 그의 손길이 전통 이탈리아 건물과 어떤 조화를 이뤘는지도 화제다.
베니스는 육상교통의 한계가 있는데다 운하를 이용한 물버스(배)도 작은 골목까지는 들어갈 수 없어 곤돌라로 갈아타거나 걸어 다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세계 최대의 현대미술 축제인 비엔날레를 성공시킨 덕에 전 세계의 내로라 하는 문화계 인사들이 매 2년마다 불평 한마디 없이 모여들도록 만든다. 또 팔라초 그라시 미술관의 경우 대형 설치작품을 실은 배가 야외 전시 형식으로 오가고 있어 운송을 위한 운하마저 문화적 공간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보여준다. 우리로 치면 광화문 한복판에 작품이 설치된 트럭이 수시로 오가는 셈이다.
시정부는 프랑스 출신 피노 회장이 2005년에 유서 깊은 건물들을 인수한 뒤 2,000만 유로를 투입해 미술관을 짓는 데 차별을 두지 않았고 그의 문화적 영향력을 고려해 오히려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유능한 인재 피노를 빼앗긴 프랑스 정부가 땅을 치고 후회했다는 후문은 유명하다.
삼성미술관 리움이 내부 사정으로 1년 이상 기획전을 열지 못해 일반인들의 문화향유 기회가 줄어든 상황에서 근대건축물인 서울 시청의 보수공사나 기무사 부지의 활용을 두고 잡음이 일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 부럽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