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CEO&Story] 하춘수 대구은행장

"나도 노력하면 CEO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죠"



평직원으로 시작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사람은 타인의 귀감이 되기 마련이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조직원들에게 동기부여가 된다. 조직원들은 그를 바라보며 '나도 CEO가 되겠다'는 다소 어렴풋한 다짐에 구체성을 부여한다. 그래서일까. 모든 조직은 CEO가 '자사 출신'으로 분류되기를 바란다.

대구은행은 그런 면에서 남다르다. 낙하산 인사가 심심찮게 목격되는 은행권에서 자행 출신 CEO가 꾸준히 배출되고 있다. 지금까지 10대 하춘수(사진) 행장을 배출한 대구은행은 6대였던 홍희흠 전 행장을 제외하면 모두 자행 출신이다. 국책은행은 말할 것도 없고 시중은행ㆍ지방은행을 통틀어서도 매우 이례적이다.


"주인의식을 가져라"… 행원과 끊임없는 소통

하 행장은 최근 신입행원 80명을 집으로 초대했다. 40명씩 이틀에 걸쳐 저녁식사를 대접하는 자리였다. 음식은 물론 행장 부인이 정성스럽게 마련했다. 신입행원을 환영하기 위해 현관에는 촛불을 장식했고 집안에는 형형색색의 풍선을 내걸었다.

"CEO가 되면서 격의 없는 행사를 자주 열자고 다짐했습니다. 행원들은 행장을 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이 벽을 깨줘야 행원들에게 '나도 노력하면 CEO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행원들과의 접점 찾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하 행장은 취임 직후 행장실 명칭을 'Hi-CS실'로 바꿨다. 재미있게도 '안녕! 춘수'의 약자다. 하 행장은 이곳에 매달 행원들을 초청, 행장 책상에 직접 앉히고 함께 차도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물론 CEO들 사이에 어느 새 유행이 돼버린 '카카오톡' '페이스북'은 기본이다.

"후배 행원들에게 늘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어떤 일을 하든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조언입니다. 내가 몸 담은 조직이 단순히 돈을 벌어다 주는 곳이 아니라 나중에 내가 CEO가 돼 회사를 대표하는 얼굴이 될 것이란 꿈과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처음부터 최고가 되겠다고 작심한 사람과 적당히 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한 사람의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지게 됩니다."

뻔하지만 중요한 이야기… "남을 배려하자"

질문의 깊이를 더해봤다. 하 행장을 CEO로 이끈 원동력은 무엇일까.

하 행장은 대뜸 조부모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어린 시절 외지에서 일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조부모님 손에 자랐다.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서당을 하셨는데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집에 찾아온 손님들을 굶겨 보낸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하 행장은 이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배웠고 이것이 CEO가 된 근원적 힘이 됐다고 했다. 그래서 하 행장은 지난 2009년 3월25일 행장 취임과 동시에 장기기증 서약을 했다. 나눔을 실천하기 위한 결정에 행원 1,200여명이 동참했다. 또 급여의 1%를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탁했다. 처음엔 하나마나 한 말처럼 들렸지만 설명을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CEO가 되려면 내가 좀 손해를 본다는 생각으로 삶을 대해야 합니다. 이는 배려하는 마음으로 극복할 수 있어요. 남을 먼저 생각하라는 게 어찌 보면 굉장히 식상한 말인데, 그 중요성을 행원으로 살아오면서 경험적으로 알게 됐습니다. 대출을 원하는 서민들에게 은행의 문턱은 높습니다. 이때 고객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주면 그들은 삶의 희망을 은행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장기기증도 마찬가지예요. 인사고과하고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는데 행원들이 동참해줬고 그게 너무 고마웠습니다."

종교는 또 다른 힘… 베풀며 살자

예정된 인터뷰 시간이 절반을 넘어갈 즈음 하 행장의 핸드폰이 '드르륵' 떨었다. 번호를 확인한 하 행장은 잠시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천주교 대구대교구장의 전화였다. 하 행장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세례명 베드로)다. 그렇다고 본인의 종교만 챙기진 않는다. 그에게 종교란 인생의 지침일 뿐이다.

"제가 행장에 취임하고 처음 찾아간 곳이 사찰입니다. 은행과 거래를 맺고 있는 사찰에 가 스님들께 거동이 편하시라고 카트를 선물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교회입니다. 오히려 천주교 신자가 성당은 찾지 않는다고 섭섭해할 정도입니다. 제가 '배려의 힘'을 강조했지요? 제게 종교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닦게 하는 참고서 같은 존재입니다."

하 행장은 시와 음악을 좋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술도 잘 마신다. 풍류를 아는 CEO란 말은 그래서 나왔다. 인터뷰 중에 읊은 시만도 어림잡아 7개에 달한다. 노래는 4곡이나 불렀다. 시와 노래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물론 부탁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그에게 시와 음악은 생활 그 자체다. 인터뷰 중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선 으레 시를 인용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은행의 정기인사가 실시된 직후 한 행원이 결과에 낙담하고 있었다. 행원과 대화를 한 하 행장은 시를 인용해 그를 위로했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구상의 '꽃자리')"

열정을 가져라!

하 행장은 특정 분야가 아닌 이상 하나를 잘하면 뭐든 잘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기업고객이 주거래은행 교체를 고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로 해당 기업 CEO 집으로 찾아갔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겼다. 그는 휴대폰 사진으로 문패를 찍고 CEO에게 문자를 보냈다. "밤새도록 기다릴 수 있는데 대구에 급한 일이 있어서 내려갑니다".


새벽6시에 CEO로부터 떠나지 않겠다는 답장이 왔다. 대구은행은 그렇게 중요한 고객을 지켜냈다. 놀랍게도 행장 재임시절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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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업무 가운데 스페셜리스트가 필요한 분야가 있어요. 국제금융ㆍ자금운용ㆍ기업금융(IB) 등입니다. 이런 예외적인 업무가 아닌 이상 은행에 필요한 인재는 제너럴리스트입니다. 경험상 어떤 한 분야에서 인정 받은 인재는 어떤 업무를 맡겨도 잘합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열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후배들이 이 사실을 꼭 기억해줬으면 합니다. 마케팅은 도처에 널려 있고 그것을 못한다는 것은 열정이 없다는 점을요."

마지막 질문. 그에게 은행이란 무엇일까.

하 행장은 얼마 전 소장품 나눔 바자를 열었다. 넥타이ㆍ만년필 등 간단한 것들부터 양준혁 선수 200호 홈런 배트, 대구FC 기념 축구공 등 행장이어서 가질 수 있었던 모든 소장품들이 나열됐다. 가장 인기를 끈 아이템은 200여점에 달한 넥타이. 명품 넥타이에 개당 1,000원이 책정돼 행원들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하지만 가장 애착이 갔던 것은 낡은 서류가방이었다.

"입행하면서 제가 어디를 가든 늘 지니고 다닌 가방입니다. 온갖 애환이 다 담겨 있어요. 경매를 부쳤는데 가장 인기가 많았습니다. 낙찰가는 비밀입니다(웃음). 아마도 인기가 가장 많았던 것은 행원에서 행장까지 오르면서 제 옆을 지켰던 서류가방의 기를 받고 싶어서겠지요. 제게 은행이란 서류가방과 같습니다. 늘 제 옆에서 함께 했던 동반자 같은 존재지요. 가방은 얻은 행원이 나중에 꼭 성공해 오늘 같은 인터뷰를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 되겠습니다."




● 하춘수 행장은


▦1953년 경북 김천 ▦1971년 대구은행 입행 ▦1972년 성의상업고 졸업 ▦1981년 영남대 경영학과 졸업 ▦1991년 경북대 경영대학원 석사 ▦1993년 대구은행 융자부 기업분석실장 ▦1997년 대구은행 서울분실장 ▦2000년 대구은행 비서실장 ▦2004년 대구은행 정보시스템본부 부행장 ▦2006년 대구은행 기업영업본부 수석부행장 ▦2009년 대구은행장 ▦2011년 DGB금융지주 회장





결식아동 돕기·공부방 개설… 지역주민에 나눔활동 활발


하춘수 선장이 이끄는 DGB금융그룹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나눔활동이다. 이달 출범 1주년을 맞은 DGB금융그룹은 지역밀착형 종합금융그룹을 목표로 '지역을 위한 나눔경영'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2002년 금융권 최초로 240여명으로 발족된 DGB봉사단이 주축이다. 현재 DGB동행봉사단으로 명칭을 변경해 계열사 임직원 9% 이상이 참여하고 대구 20개, 경북 8개, 서울 1개 등의 봉사단으로 발전했다.

봉사단의 면면도 다양하다. 임직원 부인들로 구성된 DGB부인회봉사단, 대구은행 여직원들로 구성된 동백회봉사단, 지역대학생들이 참여해 이뤄진 DGB대학생홍보봉사단, 대구은행 직원 가족들로 구성된 DGB가족봉사단 등이다.

흥미로운 점 하나. 하 행장은 봉사활동 현장에서 아내를 만났다. 고교 졸업 후 1971년 대구은행에 들어온 하 행장은 6년차인 1977년 말부터 본격적인 봉사활동에 나섰다. 부인 심선희씨는 현재 DGB부인회봉사단 회장으로 활동하며 부부가 지역나눔활동에 활발히 나서고 있다.

DGB금융그룹은 150억원의 재원을 출연해 금융권 최초로 종합사회복지재단인 'DGB사회공헌재단'을 출범시켰는데 이곳은 ▦사회복지 ▦문화예술 ▦환경 글로벌 등 다양한 복지사업을 다루고 있다.

그 중에서도 사회적 기업 설립은 DGB사회공헌재단의 핵심 추진사업이다. 지역 내 취약계층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과후학교, 다문화가정 직업훈련, 결식아동 후원 등의 사업을 벌이고 있다.

3월에는 DGB사회공헌재단의 중점 추진사업인 사회적 기업 설립의 일환으로 파랑새드림 지역아동센터가 개소돼 눈길을 끌었다. 대구은행 대명동지점 2~3층에 약 180여평 규모로 선보인 이곳은 공부방을 비롯해 지역도서관, 심리검사ㆍ치료실, 시네마ㆍ미술 치료실, 체육시설, 식당 등을 갖췄다.

하 행장은 "지역민의 사랑으로 커가는 은행이기에 그 사랑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앞으로도 돈만 유통되는 은행이 아니라 따뜻함이 묻어 있는 돈이 유통되는 은행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박해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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