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11월 10일] 출판편집 전문성 인정해야

20세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산업혁명에 의한 기계화일 것이다. 기계화는 인간이 해오던 많은 일을 대신해주고 있지만 아직도 기계가 대신하지 못하는 일이 더 많다. 책 읽는 일도 그렇고 책 만드는 일도 그 중 하나다.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한 창의성이 강조되면서 인재양성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계에 뛰어들어 이제 전문가라고 명함을 내놓을만한 나이인 마흔이 되면 설 자리가 없다는 게 출판계에서 들리는 하소연이다. 전문성을 살려 평생직장으로 삼고 싶지만 일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해 때로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냉혹한 창업의 현장에 내몰리기도 한다. 출판사의 고유기능은 ▦기획 ▦저자섭외 혹은 외서 선정 ▦편집 ▦영업 등으로 압축된다. 우리 출판사에서는 경력이 쌓일수록 편집보다는 기획, 저자섭외 등의 업무를 맡는 경우가 많다. 기획과 저자섭외가 마치 더 전문적이고 교정이나 교열 등 편집은 덜 전문적으로 보는 경향이 짙어서다. 저마다 타고난 능력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많은 출판사 편집자들은 경력이 늘면 내키지 않아도 기획ㆍ저자섭외를 맡게 된다. 책이란 글자 한자한자가 모여 만든 글자의 집합체다. 독자들이 글자에서 정보를 뽑고 정보를 다시 지혜로 만들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의 본령은 정확하고 꼼꼼한 글자에서 시작된다. 세계적인 출판사인 랜덤하우스ㆍ고단샤 등에는 30년이 넘는 경력의 편집자들이 희끗희끗한 머리에 돋보기를 쓰고 글자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우리 편집자들은 편집능력이 탁월하고 그 일을 좋아해도 오랫동안 그것만 하고 있을 수가 없다. 무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등록된 출판사가 2만개가 넘고 연간 신간 종수 4만개 이상이 쏟아져 나오는 세계 7위의 우리나라 출판계의 위상과 달리 제 기능을 하는 출판사는 100여곳에 불과하며 급하게 만든 신간 중에는 오타와 오역이 심심찮게 발견된다. 말은 영혼의 거울이라 했다. 우리 문화와 정신을 담는 말을 깎고 다듬는 일을 하는 편집이 출판계에서 소홀하게 다뤄진다면 한국이라는 고유한 문화의 색깔이 자칫 퇴색되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편집자들에게 비전을 주지 못하는 현실은 외면하고 좋은 인재들이 출판업계로 오지 않는 것을 탓하고만 있을 수 없다. 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을 양성하고 전문성을 인정하는 일은 출판계가 함께 고민해야 할 중요한 사명 중 하나다. 베스트셀러 지상주의로 내몰린 열악한 우리 출판계에서 악전고투하는 편집자들의 모습이 떠올라 기자를 씁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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