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농업혁명·산업혁명에 이어 세번째로 사회를 변화시킨 정보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정보가 권력이고 정보가 곧 돈이 되는 세상에 사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직접금융시장의 바탕을 이루는 공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공시가 제공하는 정보평등을 통해 공정한 가격결정을 유도하고 투자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보호함으로써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펀드 관련 공시에서는 공시의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경향이 짙다. '이해관계자에게 알리는 것'은 투자와 관련한 현명한 의사결정을 돕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데 알리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많이' '자주' '상세하게'가 공시의 가치판단 기준이 되고 '필요한' '양질의' '쉬운'과 같은 가치는 소홀히 취급되는 것이 현실이다. 주주가 1명에 불과한 비상장 자산운용사에 대해 주총의 소집·결의 등과 같은 사안을 공시하도록 하는 것은 효용이 의문시되는 지나치게 '상세한 공시' 사례다. 또 운용사로 하여금 자사의 소규모펀드를 매월 반복적으로 공시토록 하고 있는데 이는 변화 없는 같은 사실을 반복적으로 공시하는 '자주' '많이'의 사례에 해당한다.
이러한 현상이 투자자인 나와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관계가 매우 깊다. 더군다나 내게 아주 나쁜 영향을 미친다. 2013년 자산운용회사 전체 공시건 수는 약 8만건에 달한다.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가치 없거나 반복되는 공시 등으로 인해 정작 내가 주의·집중해야 할 정보를 취득하기 어려워진다. '정보의 홍수'에 빠진 것이다. 어쩌면 정보도 아닌 데이터에 그도 아닌 노이즈 속에서 진짜 정보를 찾는 수고로움을 유발하거나 때로는 포기하게 만든다. 세계적인 석학 움베르토 에코는 '정보의 과잉은 오히려 정보의 부재현상을 유발한다'고 했다. 진정한 투자자보호는 공시에서 '데이터 스모그(data smog)'를 제거함으로써 투자자가 가치 있는 정보를 쉽게 취득해 합리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최근에 금융위원회에서 규제개혁 과제의 하나로 펀드 관련 각종 공시, 보고서 관련 부담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바람직하고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표면적으로는 의무를 이행하는 금융회사의 부담완화이지만 궁극의 효용은 투자자가 진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금융선진국의 대표격인 미국도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적을수록 많다(Less is More)'는 기치를 내걸고 공시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시의적절한 우리의 방향설정이 구체적인 조치로 과감하고 신속하게 실현되기를 희망한다.
고객·투자자는 왕이다. 왕에게 데이터와 노이즈가 뒤섞여 있는 두꺼운 자료집을 주고 정보를 찾으라고 해서는 곤란하다. 요즘을 살아가는 투자자는 이미 수많은 정보에 노출돼 정보의 비만 상태에 놓여 있다. 진정으로 투자자·고객을 섬긴다면 의미 있고 중요한 정보 중심으로 다이어트 식단을 제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