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숫자와 경제정책

소련 정부가 공개모집으로 통계청장을 뽑았다. 최종 후보에 오른 4명에 대해 면접이 이뤄졌다. 심사위원회가 1번 후보에게 물었다. “2 더하기 2는 얼마입니까.” 1번 후보는 “5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위원회는 그에게 “혁명과업의 초과달성을 바라는 동지의 충정에는 경의를 표하지만 통계청장이 셈도 못해서는 안되겠지요” 하며 그를 돌려보냈다. 같은 질문을 받은 2번 후보는 “3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심사위원장이 벌떡 일어서더니 “혁명의 성과를 의도적으로 폄하하는 이 반혁명분자를 체포하라” 하고 소리쳤고 2번 후보는 즉시 수용소로 실려갔다. 2더하기 2가 뭐냐는 질문에 3번 후보는 자신있게 “물론 4이지요”라고 대답했다가 ‘부르주아적 과학주의’의 한계에 대한 훈계만 지독히 듣고 물러나야 했다. 결국 4번 후보가 채용됐는데 그의 답은 “어떤 답을 원하십니까”였다고 한다. 사회주의 계획경제 시대에 소련 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통계를 빈번히 조작했던 것을 꼬집는 농담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와 외환은행 매각 문제와 관련해 숫자를 다루는 것을 보면서 한참 동안 잊고 있었던 이 농담이 갑자기 생각났다. 애초에 정부는 한미 FTA가 가져올 이익이 국내총생산(GDP) 2%에 상당하다고 하다가 그 규모가 얼마 안된다는 비판을 듣자 갑자기 숫자를 GDP 7.75%로 바꿔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매각 직전까지도 9~9.5%로 추정되던 외환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매각심사 때 갑자기 6.16%로 추정돼 외환은행이 잠재적 부실금융기관으로 분류됐고, 그에 따라 예외규정이 적용돼 평소에 대주주 자격이 없던 사모펀드에 매각됐다. 물론 필자는 우리 정부가 과거 소련 정부처럼 통계를 자의적으로 조작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가 제시하는 수치들은 다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미래를 예측하는 데 어떤 ‘시나리오’를 가정하느냐에 따라 추산치가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가능한 여러 가지 숫자 가운데 정치적인 이유로 특정한 숫자를 골랐다는 것이다. 한미 FTA 효과의 경우 GDP 2%라는 숫자도, 그 숫자를 뽑아낸 대외경제연구원(KIEP) 보고서 자체에서도 인정하듯이 구조조정이 원활하게 이뤄져 축소되는 부문에서 활용되던 자원들이 모두 순조롭게 새로운 분야로 이동한다는 강력한 가정에 기초한 것이며, 7.75%라는 숫자는 이에 더해 경제개방이 경쟁과 기술이전을 촉진해 상당한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 것이라는 근거가 희박한 가정에서 나온 것이다. 외환은행 BIS 비율의 경우도 정부가 매각결정 당시 사용했던 6.16%라는 숫자는 일부 부실자산이 중복계산된 것으로 지나치게 낮은 숫자라는 게 밝혀졌다. 그러나 6.16%가 아니었다면 정확히 몇 %인지 ‘객관적’으로 말할 수 없다. BIS 비율을 계산하는 데는 당시 외환은행 자산의 미래 가치에 대한 예측이 필요했고 그 예측은 전제된 시나리오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론스타 인수 이후 외환은행 주가가 5배 뛴 것을 고려하면 당시 정부당국자들이 고른 시나리오가 지나치게 비관적이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이런 시나리오를 골랐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명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 우리는 흔히 경제학자들이 내세우는 숫자를 객관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미 일어난 일에 기초한 통계도 표본조사라든가 그에 기초한 추정 등에 따라 숫자가 상당 부분 바뀔 수 있고, 무엇보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경우에는 여러 가지 가정에 기초해 숫자가 나오기 때문에 어떤 가정을 하느냐에 따라 숫자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떤 숫자가 옳은지는 그 예측이 기초하고 있는 가정들이 얼마나 옳은가에 달려 있으며 이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정부가 하는 것처럼 자기에게 유리한 숫자들을 마치 ‘정답’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한 상황에서 정부가 굳이 극도로 낙관적이거나(한미 FTA의 경우) 극도로 비관적인(외환은행의 경우) 시나리오만 골랐다는 것은 그 의도의 순수성을 의심하게 한다. 정부 관리들은 국민들이 바보라고 여기는지 모르지만 이런 식으로 왜곡된 숫자 놀음에 기초해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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