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의 여파로 중국 경기가 빠르게 둔화하며 경착륙 우려가 고조되자 중국 정부가 경기부양 정책으로의 'U턴'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 국무원은 지난 23일 각의 후 웹사이트에 올린 성명을 통해 "경제여건 변화에 따라 예방조치를 강화하고 정책을 미세 조정해야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성명은 "우리는 안정적이며 상대적으로 빠른 경제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인 정책수단을 쓸 준비가 됐다"며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주요 인프라 프로젝트에 곧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주재한 상무회의에서는 올해 말까지 승인할 예정이던 고속도로와 교량ㆍ철도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SOC) 구축 프로젝트를 오는 6월 말까지 승인해 앞당겨 추진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은 이를 위해 민간자본 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이에 맞춰 정부의 예산 할당량도 늘릴 예정이다.
중국 정부는 이와 함께 지속적인 감세정책을 통해 기업의 세금부담을 줄이는 한편 관세인하 등을 통한 수입증진, 7조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수진작, 지급준비율 인하와 같은 유동성 확대정책을 연계해 실물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이루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또 앞으로 1년간 에너지절약형 가전제품 및 자동차를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총 363억위안의 보조금을 지원해 최소 3,000억위안 규모의 소비시장 창출에 나서기로 했다.
왕준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CCIEE)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조치는 20일 원 총리가 경제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 실시하겠다던 대책의 첫번째 후속조치"라며 "고속도로와 철도ㆍ원자력발전소에 대한 투자가 속도를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 총리는 앞서 후베이성을 방문, 꾸준하고 빠른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내수를 진작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22일에는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리커창(李克强) 총리도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 중국의 성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내수확대가 불가피하다고 역설하는 등 중국 지도부는 최근 경기부양 정책 선회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처럼 중국 정부가 경기부양에 속도를 내는 것은 올 가을 지도부 세대교체를 앞두고 경기가 예상보다 크게 둔화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스탠더드차터드의 스티븐 그린 이코노미스트는 "성장에 우려를 느낀 중국 지도층의 경제정책이 완화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이날 HSBC가 발표한 중국의 5월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전월보다 0.6포인트 하락한 48.7을 기록했다. 제조업경기를 나타내는 PMI는 7개월째 기준선인 50을 밑돌면서 경착륙에 대한 우려를 부추기고 있다. 세계은행도 올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종전 8.4%에서 8.2%로 낮춰 잡으며 가파른 경기둔화 가능성을 경고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전문가들을 인용해 "중국 정부가 세금인하와 인프라 지출 확대, 수출입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등 추가 조치들을 순차적으로 시행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가파른 경기둔화에도 중국이 꺼낼 수 있는 부양카드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 풀린 유동성으로 생긴 인플레이션 압력이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 정부는 총 4조위안을 투입하는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가동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