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9월5일] 뱁슨의 폭락 권홍우 편집위원 1929년 9월5일 매사추세츠 웰슬리. 금융인들의 오찬모임에서 로저 뱁슨(Roger Babson)이 목청을 돋웠다. ‘파국이 눈앞에 왔습니다.’ 참석자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주가가 고공행진 중인데다 뱁슨은 비관적 예측을 끊임없이 내놓아 낙관적 전망을 원하는 시장으로부터 따돌림 당하는 분석가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장의 반응. 평소 같으면 무시하고 넘어갔을 뱁슨의 발언이 오후2시부터 전파와 주가표시기를 타고 퍼졌다. 공교롭게도 이날 따라 별다른 뉴스거리가 없어 비교적 크게 취급된 그의 발언은 시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팔자 일변도의 주문이 쏟아지는 가운데 거래량이 평일의 3배에 가까운 200만주에 이르렀다. 지수는 전일의 379.61보다 9.84포인트 낮은 369.77로 떨어졌다. 고점(9월3일 381.17) 직후 찾아온 급락세는 멈출 줄 몰랐다. ‘주가가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고원에 도달했다’고 말해 최고점을 이끌었던 당대의 경제학자이자 통계학자인 어빙 피셔 교수가 나서 ‘시장이 정신착란증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라며 뱁슨을 맹공했지만 투자자들은 하나둘 월가를 떠났다. 급기야 주식시장은 10월29일 대폭락을 맞고 사람들은 폭락의 전주곡이었던 뱁슨의 발언을 ‘뱁슨의 저주’, 폭락장세는 ‘뱁슨의 폭락(Babson's Break)’라고 불렀다. 세계경제는 2차 대전 전쟁특수가 발생하기 전까지 대공황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렸다. 뱁슨의 저주가 없었다면 대폭락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대공황은 피할 수 없었다는 분석이 정설이지만 그랬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투자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긍정적인 신호만을 원하고 반응한다는 점이다. 전세계를 강타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전에도 뱁슨과 비슷하게 말한 분석가가 있었다. 시장이 본능적으로 외면했을 뿐이다. 입력시간 : 2007/09/04 1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