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심층진단] 툭하면 은폐·누락… 감시·견제장치 없어 꽉 막힌 국가 동맥

[구멍 뚫린 원전·화제 보고체계]<br>발전 정보, 정부·관련 공기업 독점<br>사고나도 쉬쉬… 지나치게 폐쇄적<br>모니터링 등 제도적 장치 서둘러야


작은 구멍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에 구멍이 뚫린 모습이다.

보령 화력발전소 화재와 고리 원자력발전소의 사고 은폐와 보고 누락 사태는 국가기반시설 관리에 커다란 허점이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늑장 보고' 문제는 상황의 심각성을 드러내준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흔치 않은 발전소 화재 사건을 주무 장관이 텔레비전을 보고 난 후에야 알게 되는 상황은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고리원전의 정전 사건이 부산시 시의원의 문제제기가 아니었으면 그대로 묻힐 뻔했던 것보다 오히려 더 심각한 일이다.

이에 따라 중간보고 체계의 확립과 외부감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간보고 없었던 보령 발전소 화재=15일 밤10시35분에 있었던 보령 화력발전소에 불이 났다는 사실이 지식경제부 상황실에 보고된 것은 약 3시간여 뒤인 16일 오전1시43분이다.

화재로 통풍기의 전원이 나가 발전기가 정지된 중차대한 사건이 있었음에도 정부는 TV 방송이나 보면서 해당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공식 중간보고는 없었다.

중부발전 측은 "화재를 진압하는 것이 먼저고 경황이 없어 정식 보고가 늦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정부가 제대로 파악을 못하는 상황은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만에 하나 이번 화재가 확산돼 대형 참사로 이어졌을 경우 지휘보고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각종 사고 발생시 사고보고 담당자를 명확히 지정하고 사고대처와 함께 보고도 동시에 이뤄질 수 있도록 보고체계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단순 고장이 아닌 화재처럼 시설에 치명적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사건은 정부 차원에서 실시간으로 사고 현황과 대응과정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관련기사



발전소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발전소에 사고가 날 경우 당황해 상황보고가 제대로 되지 않는 사례가 많다"며 "보고 담당자를 명확히 지정하고 중간보고 등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갇혀진 시스템…외부감시 강화해야=고리 원전 사고 은폐 사건의 경우 내부 직원에만 의존하다 보니 이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화력발전소도 그렇지만 특히 원전은 정보공개나 외부인의 접근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원전은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 모든 정보를 틀어쥐고 있어 고장 등이 발생해도 자세한 내부 사정은 알 수 없고 정부 측의 일방적인 발표를 그대로 믿어야 한다. 즉 민간 견제가 없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와 민간기구에서 원전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원전은 물론 보령 등 대형 발전소는 외부감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원전 관련 정보는 정부와 한수원이 가지고 있고 민간 견제는 없다"며 "앞으로는 지자체와 민간기구 등에서 원전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이라고 주장했다.

◇보고문화도 바꿔야=지경부는 보령 화력발전소 화재의 경우 늦은 밤에 일어난 까닭에 장관 보고시간은 자연스레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어찌됐든 사태파악을 했고 상황을 조절할 수 있는 상태여서 최고위층에 대한 보고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중부발전의 늑장 보고에 지경부의 자의적 판단이 겹쳐지면서 장관은 사고 발생 9시간여 뒤에나 정식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보령 화력발전소의 경우 국내 최대 규모의 석탄화력발전소로 전체 발전설비의 8%를 차지하고 있는 대규모 기지다. 그런 곳에서 화재가 일어나 1호기의 가동이 중단됐을 때는 시간과 관계없이 보고가 이뤄져야 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고리 1호기의 경우도 "찍히면 끝"이라는 폐쇄적인 한수원의 조직문화가 제대로 된 보고를 막은 한 이유라는 해석도 있다.

발전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공무원이나 공사 직원들의 경우 보고를 했다가 상급자의 질타를 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며 "발전소 고장이나 사고는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보고문화를 하루속히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