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레드오션에 빠진 금융권] (2)은행, 붐-버스트의 주인공

장사된다면 너도나도… 제살 깎기식 경쟁만<br>카드·부동산·펀드등 특정부문 집중공략<br>수익성 악화땐 일제히 썰물…악순환 반복<br>금융인력 전문성 확보등 장기적 전략을


황영기 우리은행장은 지난 10일 열린 월례조회에서 “그간 은행들은 카드나 부동산 등 불이 붙은 특정 부문을 집중 공략하는 ‘경기후행적’ 모습을 보여왔다”면서 “하강 우려가 있는 현 경기상황에서 한 부문의 미래를 내다보고 자금공급에 나서는 ‘경기선행적’ 자세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행장의 발언은 시중은행들이 장사 되는 일에 매달려 거품을 만들었고 그 결과 특정 부문에 위기를 촉발시킨 잘못을 자기고백한 것으로 해석된다. 기실 시중은행들은 그동안 한국경제에 붐-버스트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한 은행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내리면 다른 은행도 따라가고 어떤 은행이 적립식 펀드를 만들면 모두들 몰려갔다. 그러다가 수익성이 떨어지거나 부실이 발견되면 한꺼번에 빠져나오는 과정을 반복했고 그 결과는 외환위기, 크레디트카드 위기로 이어졌으며 최근 수도권 부동산 가격 앙등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금융감독당국이 은행들에 아파트 집단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과당경쟁을 자제하라고 권고공문을 내린 것은 5월이었다. 그러나 국민ㆍ우리ㆍ신한ㆍ조흥ㆍ하나은행 등 5개 시중은행을 통해 나간 아파트 담보대출의 5월 잔액은 73조1,910억원으로 4월 말에 비해 5.43%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아파트 1채당 평균 대출 규모도 4,408만원에 달해 지난해 말의 4,228만원에 비해 4% 가까이 늘어났다. 은행들이 무한경쟁에 나서면서 상대적으로 영업이 손쉬운 아파트 담보대출에 주력했고 따라서 제재를 수반하지 않은 금융감독원의 권고를 무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재건축ㆍ재개발 등 집단대출에서 저금리 경쟁을 강화하면서 아파트 담보대출 금리는 2003년 말 6.31%에서 지난해 말 5.48%까지 낮아진 데 이어 최근에는 4%대 금리에 진입했다. 은행들은 기업의 자금수요가 별로 없고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부실 위험성도 낮기 때문에 부동산 쪽으로 대출을 늘리고 경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정부가 아파트 가격 상승을 막기 위해 온갖 공권력을 동원하는 동안에 은행은 대규모 유동성을 부동산 쪽으로 흘러들어가도록 창구역할을 한 셈이다. 한국은행 통계에서 5월 중 가계대출 증가액은 4조2,000억원으로 19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한 것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누구를 위해 싸우는가. 지난해 말부터 시중은행들이 전쟁을 선언한 후 스스로의 수익성을 악화시켰다. 지난해 말 사상최대를 기록했던 5개 은행의 충당금 적립 전 영업이익은 1ㆍ4분기에 지난해 동기 대비 무려 19.4%나 감소했다. 강종구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차장은 “외국은행 진출로 우량고객 선호현상이 일반화되면서 중소기업 대출이 축소되고 은행권의 공공적인 역할이 약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들의 제살 깎아먹기 경쟁은 예대마진 경쟁에 이어 수수료 차별화, 적립식 펀드, 투신상품, 방카슈랑스, 프라이빗뱅킹(PB)에 이르기까지 확산되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의 출범과 함께 촉발된 ‘특판예금 판매경쟁’은 5%대 수신금리 상품을 쏟아내 사실상 은행권의 예대마진이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예대금리차는 1월 2.18%포인트를 정점으로 4월 말에는 2.09%까지 떨어져 사실상 예대마진 1%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5개 은행의 적립식 펀드 판매금액은 지난해 말 1조4,471억원에서 5월 말에는 3조1,912억원으로 두 배 이상 팽창했다. 하지만 은행들이 상품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판매규모를 늘려 일부의 경고처럼 향후 경기부진에 따른 주가하락이 이어질 경우 각종 후유증이 예상된다. 구본성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 은행들이 추진하고 있는 전략들이 차별화되기보다는 전략적인 유사성이 아직까지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은행권이 제살 깎기식 경쟁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건범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기관은 경력관리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금융연수체제의 네트워크를 강조해 금융인력의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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