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기술금융, 은행 팔 비틀기로는 안착 어렵다

은행들이 지난달 기술신용평가서를 매개로 555개 중소기업에 3,300억원의 기술금융을 해줬는데 절반가량이 기존 거래기업이었다고 한다. 정부가 기술금융 실적을 강요하자 기존 거래기업에 기술금융의 껍데기만 씌워 화답하는 모양새를 취한 셈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은행이 기술보증기금 보증부 대출이나 정책금융공사 간접대출(온렌딩)을 할 때 기술신용평가기관(TCB)의 기술신용평가를 받도록 의무화했다. 담보나 신용을 넘어 기업의 기술과 성장 가능성에 기초한 기술금융을 활성화한다는 취지에서다. 실적이 우수한 은행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도 약속했다. 문제는 중소기업을 지원 대상으로만 보는 강박증과 준비부족이다. 기술력이 뛰어난 중소기업에 담보나 보증 없이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기술금융의 취지에 반대할 이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를 현실화하려면 부작용이 최소화되도록 제도를 꼼꼼하게 설계하고 운영해야 한다.

관련기사



국내 은행들은 담보·보증 위주의 대출 관행에 익숙하다. 3개 기술신용평가기관의 평가서만 믿고 신용대출을 해줄 은행은 없다고 봐야 한다. 은행들이 평가서를 신뢰할 만한 레퍼런스를 쌓아가면서 차근차근 추진하는 게 맞다. 기존 담보대출보다 리스크가 큰 만큼 부실 발생시 은행의 건전성, 은행과 TCB의 책임소재 문제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은행의 보신주의 여신 관행을 개선할 수 있다.

기술신용평가 수수료를 전액 은행에 부담시키는 것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건당 50만~100만원 수준의 평가 수수료는 어찌 보면 은행에 큰 부담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대출 수혜자인 중소기업도 수수료의 일부를 분담하는 게 온당하다. 기술금융 제도가 없었다면 대출을 받지 못하거나 높은 이자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술신용평가서의 모태가 된 기보 기술평가서의 경우 평가 수수료가 200만원 안팎이었는데 해당 기업과 은행이 분담했다.

저금리 기조로 은행 수익률이 1%가 채 안 되는 상황에서 "5억원 대출 때 수수료 100만원은 0.2%밖에 안 된다"고 중소기업 편만 들 게 아니다. 대출사고 위험이 큰 점도 고려해야 한다. 정부가 수수료 일부를 보조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술금융은 정부가 은행의 팔만 비튼다고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