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고용 안정이냐 유연성이냐

'사내하청 활용은 불법' 판결로 노동 시장 최대 쟁점 부각

파견·사내하청 잣대 단편·기계적

철강 등 제조업종 줄소송 불보듯


'고용 안정'이냐 '고용 유연성'이냐.

지난 18·19일 현대차의 사내하청 활용은 불법파견이며 이들 근로자는 정규직이라고 판단한 서울중앙지법 판결로 최근 노동 시장 최대 쟁점 가운데 하나인 이 화두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재판부는 "현대차는 (직접 고용한 직원뿐 아니라) 사내하청 근로자들에도 적용되는 안전보건관리 표준 등을 마련해 시행했다"며 "원고들이 사내하청 업체가 아닌 현대차의 지휘를 받은 파견 근로자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사내하청(도급)과 파견은 모두 간접고용의 일종이다. 간접고용은 직접고용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근무는 원청회사 사업장에서 하지만 근로계약은 하청회사와 맺는 형태다.

이때 근로 지휘감독권이 원청회사에 있다면 해당 근로자는 파견이며 원청에서 일하지만 하청업체의 지시를 따른다면 도급계약을 맺은 것으로 봐야 한다.

이번 현대차 사건은 인력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기업과 임금이 다소 적고 고용이 불안정한 근로자들의 '정규직 요구'가 맞서면서 시작됐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독일·일본 등 다수 선진국과 달리 파견이 가능한 업종이 32개에 불과하며 제조업은 무조건 파견이 금지된다. 즉 현대차 사내하청에 관한 법원 판결은 '파견이 금지되는 업종에서 파견 근로자를 활용했으니 불법'이라는 논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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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도급 판단 기준 애매모호=산업계와 재계의 불만도 여기서 비롯된다. 자동차 컨베이어벨트처럼 하나의 생산공정 안에서 일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사내하도급 근로자라도 원청의 지시를 받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데 파견이냐 도급이냐를 가르는 잣대가 지나치게 단편적·기계적이라는 이유에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와 관련, "최근 일련의 판결은 본질적·구조적인 지휘 시스템이 아닌 임시적·간헐적인 지시 형태를 파견과 도급을 가리는 잣대로 삼고 있어 법리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처럼 제조업의 사내하도급 활용에 제동을 건 이번 판결로 기업 인력 운용의 탄력성이 크게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자동차뿐 아니라 철강·조선·화학 등 그동안 도급 형식의 간접고용을 광범위하게 활용해온 업종의 회사들이 스스로 간접고용 근로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줄 소송을 피하기 힘들게 됐기 때문이다.

이형준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경기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는 업종일수록 간접고용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며 "제조업에 파견근로를 허용하면 기업 경쟁력이 높아지고 대규모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는 사실이 이미 선진국을 통해 입증됐다"고 강조했다.

2010년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제조 등 17개 주요 업종에 파견을 허용할 경우 4만6,000여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기준 전체 임금근로자 중 파견근로자 비율은 독일과 프랑스가 2%, 영국이 3%에 달하는 반면 한국은 0.4%에 불과한 실정이다.

◇"원·하청 공정거래 관행 정착이 우선"=이런 가운데 간접고용 근로자의 고용 안정과 근무 여건 개선은 파견에 대한 기계적인 제한이 아닌 원·하청 간의 공정거래 관행 정착을 통해 이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박 교수는 "원청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계약 해지권 등을 남발하는 사례가 허다하다"며 "원·하청 관계 정상화야말로 고용 유연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간접고용 근로자의 고용 안정을 담보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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