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시'의 순 제작비는 약 30억원. 비슷한 시점에 대적해야 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하'…스파이더맨')의 60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개봉 전 우려도 컸다. 70%에 육박하는 예매 점유율을 기록한'…스파이더맨'과 제대로 맞붙을 수나 있을지 말이다. 우려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손익 분기점(BEP) 200만을 넘기고 누적관객 350만(18일 기준)을 넘기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해 700만 관객을 모았던 '최종병기 활'이 8일만에 200만을 돌파한 것과 같은 속도다.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정우(43·사진) 감독은 "1등(박스오피스1위)할 생각은 꿈도 안 꿨다. 나를 선택해준 배우들에게 보답한 것 같아 다행"이라며 기쁨을 표했다. 주연배우 김명민이 "'연가시'는 감독의 연출력으로 이끌어가는 작품"이라 평한 것과는 달리 박 감독은 모든 공(功)을 스태프와 출연진들에게 돌렸다.
"첫 모니터 시사(영화 완성 전 일반인 대상 시사) 때 최저점을 받았죠.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였어요. 촬영은 끝 마쳤는데 결과가 어떠할지 어느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영화였죠. '연가시'는 빈 공간이 많은 영화였어요. 그런 부족한 것들을 CG를 포함한 편집의 힘으로 차츰차츰 메워나가 완성작을 만든거죠."
박 감독은 영화가 큰 사랑을 받은 이유로 10대 청소년과 가족 단위 관람객을 극장으로 불러모은 게 한 몫 했다고 평했다.
"영화 개봉 전 연가시 웹툰에 대한 청소년들의 관심이 정말 많았어요. 이 관심이 단순히 연가시라는 생물체에 대한 관심으로 그치고 영화를 보고 싶다는 마음과 잘 맞아 떨어질지 반신반의 했는데, 다행히 그게 잘 연결 됐나 봐요. 또 하나는 저와 출연배우들이 지방 무대 인사를 돌면서 예정에 없던 상영관을 들어가게 됐죠. 가족 단위 관람객이 눈에 띄게 많았어요. 그 때 괜히 느낌이 좋더라고요."(웃음)
물론 영화에 대해 호평만 이어지는 건 아니다. 평단은 물론 일부 관객은 지나치게 신파적 느낌이 묻어나는 영화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연가시를 둘러싼 재난은 재난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이 재난의 원인을 둘러싼 음모에 초점을 맞춘 액션 스릴러로 갈 것인지, 가족 이야기를 버무릴 것인지 고민이 많았어요. 물론 액션 스릴로 가면 감독으로서 평가가 보다 후할 수는 있었겠죠. 하지만 무엇보다 지금의 상황에서 제가 잘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했어요. 전자보단 후자였죠. 액션 스릴러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관람객들에겐 이런 부분이 실망감이나 약간의 배신감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연가시'를 다윗에 비유하자면 아직 두 개의 골리앗('다크나이트라이즈''도둑들')과의 대적이 남아있다. 승승장구를 이어갈 수 있을지 박 감독에게 물었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패죠. '다크나이트라이즈'와 '도둑들'에 밀려도 면피만 하자는 당초 목표를 이룬 셈이어서 개인적으로는 만족합니다. 조금씩 길게 가고 싶어요."
박정우 감독은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 등 유수의 흥행작 각본을 담당했다. 감독보다 시나리오 작가로 명성이 더 높은 게 사실. 감독으로서 '연가시'는 그의 네 번째 연출작이자 흥행 대열에 합류한 첫 작품인 셈이다. 개인적으로 의미가 남다를 테다.
"이제껏 제 과거가 제 발목을 잡았죠. 연가시가 가장 반가운 건 관객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박정우가 코미디 말고 다른 것도 할 수 있구나'를 어느 정도 증명해 보인 계기가 됐다는 점이에요. 특정 장르에 승부를 걸기보다 앞으로 하고 싶은 얘기를 다양하게 마음껏 풀어놓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