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독립' 넘어 '동양평화' 주창했다

'한·중·일 동등입장 평화론' 오늘의 국제평화정신과 통해<br>세계 최초 '블록경제론' 제시한 경제학자로도 평가 받아

26일부터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 서 열리는'독립을 넘어 평화로' 특별 전에 체포 직후 촬영된 안중근 의사의 사진이 공개된다. 앞으로 모은 왼손약 지의 단지 흔적과 앞가슴의 수형번호가 적힌 리본이 생생하다.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1910년 3월 26일 교수형을 당한 실제 위치에 복원된 교수대와 계단. /서울경제DB

1909년 안중근 의사가 구국투쟁을 맹 세하며 손가락을 끊어 찍었던 손도장.

SetSectionName(); '독립' 넘어 '동양평화' 주창했다 ■ 26일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0주년'한·중·일 동등입장 평화론' 오늘의 국제평화정신과 통해세계 최초 '블록경제론' 제시한 경제학자로도 평가 받아 장선화기자 india@sed.co.kr 26일부터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 서 열리는'독립을 넘어 평화로' 특별 전에 체포 직후 촬영된 안중근 의사의 사진이 공개된다. 앞으로 모은 왼손약 지의 단지 흔적과 앞가슴의 수형번호가 적힌 리본이 생생하다.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1910년 3월 26일 교수형을 당한 실제 위치에 복원된 교수대와 계단. /서울경제DB ImageView('','GisaImgNum_3','default','260'); 1909년 안중근 의사가 구국투쟁을 맹 세하며 손가락을 끊어 찍었던 손도장. ImageView('','GisaImgNum_4','default','260');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를 조금 넘긴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역. 당시 중국 중동부 철도의 중심이던 이곳에 러시아 군악대의 팡파르 소리를 뚫고 총성이 울렸다. 안중근(安重根, 1879년 9월 2일~1910년 3월 26일) 대한국의군 참모중장이 조선과 중국 침략의 원흉인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것이다. 오는 26일로 100주년을 맞는 안의사의거의 의미를 다시 조명해 봤다. ◇왜 이토를 저격했나=현장에서 체포된 안중근은 심문과정에서 이토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죄상을 15가지로 들었다. 첫번째와 두번째는 명성황후 시해와 고종황제 폐위를 거론한 것으로 보아 이 두가지는 다른 무엇보다 안중근을 격분하게 한 사건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안중근은 또 이토가 정미7조약 등을 강제로 체결했으며, 무고한 한국인을 학살했고, 정권을 강제로 빼앗았으며, 철도ㆍ광산ㆍ산림ㆍ천택(川澤)을 강제로 탈취했고,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도 용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안중근이 일본 천황, 즉 당시 메이지(明治) 천황의 아버지인 고메이(孝明) 천황을 이토가 죽였다는 사실도 거론했다는 것. 물론 안중근이 거론한 이토의 죄상 중 사실과 명백히 다른 것도 있고, 이토가 관여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것도 있다. ◇동양평화의 기틀을 마련하다=일제의 만행에 신음하던 조선과 중국은 물론 세계 열강이 안의사의 거사로 일제의 침략에 다시 주목하게 됐고 조선과 중국에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중국총리는 "조선과 중국 양국 인민의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공동 반대 투쟁은 이때를 기점으로 시작됐다"며 안중근을 높이 평가했다. 안중근은 교육운동, 종교운동 등에도 활발하게 활동을 했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에서 안중근 자료집 발간을 주도하는 조광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안중근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이 분명하지만 교육, 민족경제, 종교 등 다양한 측면에서 활동한 이력도 함께 봐야 안중근을 올바르게 볼 수 있다"며 "한ㆍ중ㆍ일 세 나라가 대등한 입장에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안중근의 동양평화론도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국제평화 정신과 맥이 통한다"고 말했다. 안중근은 세계 최초의 블록경제론을 제시한 경제학자로도 평가받고 있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안중근은 일본이 러일전쟁의 전리품으로 획득한 뤼순항을 중국에 돌려주고 이를 개방항구로 삼아 이곳에 동양평화회의 본부를 두고 은행을 설립하며, 또 3국의 주요 지방에 은행지점을 내어 공용화폐를 널리 보급하여 산업발전을 함께 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그는 세계 최초의 블록경제론 주창했던 경제학자였다"고 평가했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