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법정관리 신청전 CP 발행 제재' 논란

회초리 들려던 당국, 법적 근거 약해 고심<br>LIG건설·삼부토건 사례 '사기 판매' 지적 불구<br>불완전 판매·악의성 입증 어렵고 규정도 모호

LIG건설에 이어 삼부토건이 법정관리 신청 전 기업어음(CP)을 발행해 '부적절한 발행 아니냐' 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13일 서울 남창동 삼부토건 본사 로비에서 직원들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LIG건설의 법정관리 신청 이후 사석에서 만난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이 회사가 대규모로 기업어음(CP)을 발행한 사실에 극도로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그룹의 꼬리 자르기도 문제이지만 시장을 어지럽히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의 '의지'를 시험하듯 이번에는 삼부토건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이전 또다시 CP를 무더기로 발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국의 한 관계자는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부도 직전 CP를 발행한 사례가 더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금융 당국은 차제에 이 같은 행위에 회초리를 들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실로 들어가면 쉬운 일이 아니다. 제재를 하려면 합당한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받쳐줄 규정이 모호한 탓이다. 일부에서는 당국이 무리하게 제재할 경우 행정소송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법정관리 신청 전 CP 발행…사기 판매인지가 쟁점=금융 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건설사의 CP 판매에 대한 질문에 '사기 판매'라는 단어를 썼다. 이는 현 상황에 대한 당국의 입장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금융감독원은 우선 가장 먼저 논란이 된 LIG건설의 CP 발행부터 조사에 들어갔다. 대상은 유통과 발행 등 크게 두 단계로 이뤄진다. 유통 단계는 이를 주선한 우리투자증권이 판매과정에서 불법ㆍ탈법 행위를 했는지가 포인트다. LIG건설이 발행한 CP는 총 1,976억원으로 이 중 42억원이 법정관리 신청 열흘 전 발행됐다. 금감원은 아직 뚜렷한 물증을 찾지 못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투자자들의 서명을 받는 등 객관적인 과정만 보면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우리투자증권에서 확보한 판매 서류도 깨끗하다"고 말했다. 당국은 이에 따라 불완전판매 여부를 조사하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도 '사기 판매'를 언급하면서 자본시장법을 근거로 들었다. 핵심은 과장광고 여부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투자를 권유할 때 상품의 내용과 위험성 등을 설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 투자권유 과정에서 거짓말을 하거나 불확실한 사항을 확실한 것처럼 오해를 유발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이 역시 입증하기 쉽지 않다. 법규정 자체가 추상적인 탓이다. 어디서부터 '과장'에 해당되는지 판단하기 애매하다는 얘기다. LIG건설이 LIG그룹의 자회사라며 투자자를 안심시킨 행위도 제재 대상으로 보기에 쉽지 않다. 투자자들 또한 LIG건설이 아닌 그룹을 보고 CP를 매입했을 수 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도 "무담보 증권이라는 점과 투자손해 보호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지했다면 LIG건설이 LIG그룹이라는 점을 내세웠다고 징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건설사의 발행 자체를 처벌하기도 모호=두 번째 포인트인 발행 단계 또한 모호한 측면이 많다. 당국은 기업이 법정관리를 염두에 두면서도 부도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 '악의적으로' CP를 발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사기발행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중견 그룹의 한 재무 담당임원은 "어느 기업이 망할 것을 상정하고 어음을 발행하느냐. CP 발행은 자금난을 최대한 피하기 위한 지극히 정상적인 재무 활동"이라고 말했다. 결국 사기를 판단하려면 직접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특히 LIG건설의 경우에는 비상장법인이어서 금융 당국이 조사하기에는 벅차다. 상장법인이라면 당국이 감독ㆍ조사권을 통해 방법을 강구할 수 있지만 비상장은 사실상 통제 밖이다. 검찰이나 경찰의 강제 수사 외에는 입증할 방법이 없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자료 제출 요구를 하지는 않았지만 인지수사를 벌이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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