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자금흐름 동맥경화증 심각/한보부도 파장­금융권 동향

◎대출·지보 자제 회사채도 가려 매입/부실채권 백억이상 증가 신금 속출경기침체로 가뜩이나 경제주체들이 경제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한보사태로 인해 자금흐름마저 동맥경화증을 보임에 따라 우리 경제가 추락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한보철강의 부도로 수조원대의 자금이 묶인 금융기관들이 통화당국의 풍부한 자금지원에도 불구하고 자금운용을 지극히 보수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중소기업은 물론 중견기업과 일부 대기업까지 자금난이 확산되고 있다. 금융권 중소기업 대기업의 목마른 자금수급 실태를 종합한다.<편집자주> ○…한보사건이 터진 이후 금융기관들은 대출이나 지급보증은 물론 회사채도 가려가며 매입하고 있다. 채권시장에서는 같은 은행보증 회사채라 하더라도 5대 계열기업군 소속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가 아니면 높은 금리(낮은 채권가격)를 요구한다. 실제로 최근들어 같은 은행보증이라 하더라도 수익률이 발행기업에 따라서 0.01∼0.02%포인트 가량의 스프레드가 벌여져 거래되고 있다. 또 기타보증 회사채의 경우에도 보증기관이 영세하거나 신인도가 떨어지면 기타보증 회사채간에도 수익률이 달라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나마 회사채발행에 있어서 이같은 금융기관의 지급보증을 받은 기업들은 행복한 입장이다. 은행이나 제2금융권 금융기관들이 웬만한 기업이 아니면 지급보증 자체를 꺼리고 있어 영세하거나 재무구조가 부실한 은행은 회사채발행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다. 사채시장에서는 대기업이 발행한 A급 사채금리조차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한보철강 부도 이전인 지난달 20일 월 1.14% 수준이던 A급 사채금리는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면서 5일 현재에는 월 1.20∼1.25% 수준까지 치솟았다. 30대 계열기업군이 아닌 기업이 발행한 B, C급 어음의 경우 거래가 거의 형성되지 못하거나 턱없이 높은 금리를 줘야만 겨우 할인이 가능하다. 결국 통화당국이 한보사태와 설 자금수요를 대비해 금융권에 쏟아부은 5조5천억원 가량의 자금은 우량회사채 및 CD매입, 콜운용 등을 통해 금융권내 혹은 일부 우량 대기업으로만 흐르고 있어 정작 자금이 필요한 중견 혹은 중소기업들은 이 자금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상황이다. ○…종합금융사들은 한보사태 이후 잇따라 발생한 중견, 중소기업의 부도로 피해액이 늘어나면서 여신심사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삼화정밀, 마이크로코리아, 마이크로세라믹 등 중견기업의 부도로 2백50억원에 달하는 부실채권이 발생, 부도위험이 높은 업종이나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억제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신용금고업계도 중소기업들의 연쇄부도에 따른 금고의 피해가 급증함에 따라 여신을 자제하고 있다. 서울소재 대형금고의 경우 최근 부실채권 규모가 1백억원이상 증가한 금고가 속출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공격적인 영업을 해온 할부금융사, 파이낸스사 등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보유어음을 시장에 유통시키고 있으며 추가여신에 대해서는 엄두를 내지못하는 실정이다. ○…한보부도 파문 이후 보험사들도 기업대출 심사요건을 강화하며 기업대출을 자제하고 있다. 특히 부도설이 나돌고 있는 일부 부실기업에 대해서는 대출금을 조기회수 하고 신규대출을 억제하는 등 부실채권 축소를 위한 사전예방에 나서고 있다. 한보부도로 인해 11개 생·손보사가 총 1천3백억원 상당의 부실채권을 떠안게 된 것과 관련, 대부분의 보험사들이 중소기업에 대한 신규대출을 기피하는 한편 대출심사에 앞서 반드시 현장 실지조사를 벌이는 등 대출요건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또 일부 생보사들은 부도설 등 악성루머가 나돌고 있는 몇몇 기업에 대해 대출자금을 조기회수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관련기업들의 자금난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금융팀> ◎중소업체 실태/무더기 도산위기 직면/정부 지원책 은행측 협조안해 “그림의 떡”/일부업체 비자금관련 검찰조사 받기도/사채시장마저 위축 “사상 최악의 설대목” 한보철강 등과 거래해 온 중소기업들이 무더기로 쓰러질 위기에 놓였다. 이들 업체들은 한보로부터 적지않은 돈을 받지못해 미수금을 안고 있는데다 이미 받아서 할인한 어음들까지 은행에 물어주어야 할 형편이어서 임금은 커녕 부도위기에 직면해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피해업체들에 대해 자금지원을 해주겠다고 발표했지만 일선 은행창구에서는 대출불가 입장을 밝히고 있으며, 신용보증기금에서는 신용보증금액이 1억원 이하인데도 보증인을 요구해 피해 중소기업들이 자금을 지원받기란 거의 불가능한 형편이다. 특히 일부 중소기업은 한보측이 비자금 조성을 위해 공사비를 부풀리기도 했다는 의혹과 관련, 검찰조사까지 받고 있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정부는 중소기업들이 한보로부터 받아 이미 할인해 쓴 어음에 대해 3개월이내 기간의 일반대출로 전환해준다고 발표했지만 채권관리단과 한보철강의 확인서를 받아가도 주거래 은행인 제일은행을 제외하고는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은행들은 정부의 지시에 따라 설령 일반대출을 해준다고 하더라도 채권확보 차원에서 담보제출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중소기업들로서는 정부의 자금지원책이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 한보사태와 관련, 정부조치에 대한 중소기업의 반응을 들어본다. ○…한보철강에 자재납품과 공사를 수행한 K사의 경우 미수금이 1백90억원이나 잠겨있고 할인해 사용했다가 은행들로부터 환매요구를 받고있는 한보 어음이 90억원에 달하고 있으나 은행들은 담보를 요구하며 일반대출 전환을 거부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설을 앞두고 직원들 임금은 커녕 돌아오는 어음도 막을 길이 없어 회사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Y사의 이모사장은 『은행측이 대출전환에 담보를 요구해 정부가 일러준대로 신용보증기관을 찾아갔으나 일정금액 이상의 재산세를 납부하는 사람을 보증인으로 세울 것을 요구하는 바람에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이사장은 또 『한보사태로 사채시장마저 위축되고 모두가 돈 빌려주기를 꺼려해 사상최악의 설대목이 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한보그룹부도로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중소 레미콘업체들은 하소연도 할 수 없는 딱한 처지에 놓인 상황. 설령 부도를 맞았더라도 부도얘기가 나돌면 주변에서 모두 색안경을 쓰고 보기 때문에 회사가 더 큰 곤경에 처하게 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 더욱이 중소레미콘업체들은 대부분 3, 4차하청을 받아 레미콘을 공급해 왔기 때문에 함부로 불평조차 할 수 없는 게 사실. 한보계열사로부터 받은 5개월짜리 진성어음 5억여원어치를 갖고 있다고 말한 Y사의 김모상무는 자신들의 어려움을 알아준듯 정부가 자금지원계획을 발표하자 곧바로 은행에 달려갔으나 헛수고만 했다고. 이름을 절대 밝히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김상무는 은행관계자들은 몸조심하기만 급급했다고 실토. 그는 『금융계 합병이나 감축얘기가 나도는 마당에 은행직원들에게 한보사태가 관심거리나 되겠느냐』며 억지로라도 은행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보철강의 당진공장 및 부산제강소에 원자재를 납품해오던 경남 소재의 Y사는 이번 사태로 모두 18억원의 피해를 보고 존립자체가 위기에 처해있는 상황. Y사는 현재 한보철강으로부터 6개월짜리 어음 8억9천만원이 묶여 있으며 나머지는 4개월이 넘도록 미수금으로 잡혀있다. 연간 매출액이 87억원 정도라 매출액의 20%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의 피해를 본 셈이다. 대치동의 채권단과 은행등 이곳 저곳을 뛰어다녔던 이 회사의 P사장은 그나마 기댈곳은 주거래은행이지만 좀더 시간을 갖고 두고보자는 반응만 보일뿐 정부의 지원방침과는 달리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주거래은행이 이번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제일은행이어서 몇차례 지점에 가 봤지만 창구직원들은 잔뜩 움츠리고 있어 쉽사리 애기를 꺼낼 수도 없는 실정이다. ○…중소업계는 최근 한보사태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책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지만 정작 일선 금융기관들의 비협조로 실효성있는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반응이다. P업체의 K사장은 『정부가 한보철강으로부터 받은 진성어음은 전액 할인해 주겠다고 밝혔지만, 일선은행들은 대출한도 초과, 별도의 담보 요구등 이런저런 이유로 어음할인을 기피하고 있다』고 밝혔다. K사장은 『특히 시중은행중 S은행, H은행 등은 진성어음의 할인은 고사하고 이미 할인한 어음을 다시 환매토록 요구하는 등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B산업의 C사장은 『6공화국때인 지난 92년 노태우 전 태통령이 진성어음할인을 직접 지시했음에도 실제 이루어진 것은 소수』라면서 『대통령 지시도 안먹혀 들어가는 일선 금융기관을 통해 지원책을 강구하겠다는 정부의 문제접근 자체가 잘못됐다』고 밝혔다. C사장은 『정부가 진정 중소기업 지원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다면 금융자금이 아닌 정부 재정자금을 신용으로 대출해 주는 길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중소기업팀> ◎대기업·중견기업 실태/운전자금 확보 “하늘의 별따기”/“6조 풀었다는데 돈구경 못했다” 하소연/신용도 급락… 해외자금 조달도 큰 차질 A전자 금융팀의 L차장은 요즘 최대 자금 성수기인 설을 앞두고 「한보후유증」을 심하게 앓고있다. 해외사업용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채 5백억원을 발행하려고 주거래은행에 지급보증을 요청했으나 2주째 「딱지」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한보부도사태가 터진이후 주거래은행이 몸을 사리면서 마냥 『기다려달라』며 지급보증을 미루고있는데다 지급보증요율도 대폭 올려달라고 요구, 자금확보에 비상이 걸려있는 것이다. 비단 A전자만이 아니다. 한보부도가 일파만파의 파장을 가져오면서 금융권이 대출을 기피하고, 사채시장도 꽁꽁 얼어붙으면서 기업들이 투자자금은 물론 운전자금 확보에도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채시장에선 삼성 현대 LG 대우 선경 등 신용이 확실한 일부재벌계열사의 특A급 어음을 제외하곤 대부분 기업들의 할인이 이루어지지 않고있다. 사채시장에선 악성루머로 고전하는 일부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할인불가업체 리스트」도 나돌아 해당기업들이 이를 진화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은행 종금사 등 1, 2금융권도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에 대한 대출이 거의 스톱상태에 있다. 돈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비명이 중소기업은 물론 중견기업에서까지 나오고 있다. 기업들은 정부가 한보부도이후 6조원을 살포했지만 어디로 흘러갔는지 도무지 돈구경하기 힘들다고 불만이다. 한보여파로 최근 한국IPC와 협력업체인 멀티그램을 비롯 마이크로코리아 등의 잇단 부도는 설이후 「부도도미노」를 알리는 전주곡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재계는 가뜩이나 엔저로 주력인 반도체 전자 철강 조선 자동차의 수출이 뒷걸음질치거나 둔화되고 있고 내수경기마저 불황으로 침체터널을 벗어나지 못하는 등 본격저성장시대를 맞아 살아남기에 부심하고 있다. 이로인해 자칫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저성장)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한보사태로 재계가 심각한 자금난을 겪으며 회복하기 힘들정도로 그로키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양질의 자금조달창구였던 해외파이낸싱도 상당한 차질을 빚고있다. 한국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신용도가 급추락, 전환사채발행계획을 백지화하거나 신디케이트론형태의 장기자금조달스케줄을 무기 연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B사가 다음달 중순 런던에서 6천만달러규모의 전환사채를 발행할 계획이었다가 이를 무기연기하고 관련 해외프로젝트도 연기한 데서 잘 나타난다. 재계는 이에 따라 장단기 자금확보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예컨대 삼성전자 등 대기업들은 ▲금리예측능력을 강화하고 ▲장단기 자금확보를 위한 포트폴리오구축에 힘쓰고 ▲달러에 대한 원화환율의 급등에 대응, 환차손을 줄이기위해 외화표시대출자금 조달을 억제하고 있다.<이의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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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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